성서 특강. : 2023. 10. 22. 13:00~15:00. 장소 : 대구베델장로교회. 강사 : 박성완박사.

 

첫 시간 강의목적 : 현대 크리스천의 심각한 문제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까를 구체적으로 연구한다.

 

1. 인사 : 잘 오셨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큰 기쁨을 나누자.

 

2. 서론 우리는 왜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가? 질문해야 한다.

 

3. 개신교회의 특징

    개신교회의 특징은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개혁자들의 슬로건을 다시 들어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Return to the Bible!” 또는 성경으로 하여금 성경이 되게 하라/Let the Bible be the Bible!” 이라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4. 성경이 무엇인가?

    기독교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무슨 말인가? 성경에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삶의 의미, 기쁨, 가치, 그리고 행복과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고 믿는다.

 

5. 그렇다면 성경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한다.

    성경은 절대적인 규범이라는 말이다. 라틴어로-Norma Normans(Ruling Rule) 이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훨씬 더 낮은 차선의 규범이란 게 있다. 곧 신앙고백, 교리, 제도 등이다. 이를 라틴어로 Norma Normata(Ruled Rule) 라고 부른다.

 

6. 무엇보다도 성경을 먼저 잘 배워야 한다.

    교리보다, 제도보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일찍부터 유대인들은 가정에 서 성경을 배우고 가르쳤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쉐마교리를 지킨다. 6:4-9은 우리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집에서 뿐 아니라, 여행길에서도, 누워있을 때도 가르쳤다.

 

A. 현실은 전혀 다르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 <베델성서>라는 성서연구 학습서를 쓴 할레이 스위감은 자기 교인들에게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지 여부를 조사했는데, 1%미만 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떨 것 같은가?

 

B. 심각한 모순이다.

    성경의 중요성은 알지만, 성경을 읽지도 않고, 또는 성경을 알고 있다 해도 성경말씀대로 살 지 않는다는 말이다. 심각하고 엄청난 모순이다. 우리나라 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C. 성경공부를 하고 있지만, 많이 다른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성경 공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성경 자체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배우는 것인데, 연역법-Deduce)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성경에서 찾아보는 방법인데 이를 귀납법적인(Induce) 공부라고 한다.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들이 가진 관심사를 듣고 싶어 한다는 차이가 있다. 교회에 와서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까?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종이 귀담아 듣겠나이다. 라고 해야 한다. 우리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 우리 목사님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시옵소서. 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하나님 제 마음에 쏙 드는 말씀을 들려주옵소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 우리의 관심사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들을 다음에, 자신들의 관심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연역법적인 성경을 공부한 후에, 귀납법적인 성경공부를 해야 옳다는 말이다.

 

7. 그러면 어떻게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할까?

   가. 첫째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는 공부다. 나무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 아니라 숲을 먼저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전체 내용이 의도하는 바를 살핀다. 그 결과 통전적이며(integrity)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단락마다

그 중심점을 적어두는 훈련을 하자.

   나. 두 번째로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성경은 히브리인이라는 특별한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삶의 무대와 내용들이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낯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고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헬라사고방식인데, 관념-추상, 논리-과학-방법에 관심을 가지는데, 이론적인 특징이 있다.

둘째, 히브리사고방식은 직관-구체, 종교적-목적-근거에 관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물을 때, 헬라 사고방식은 완전, 전지전능, 자비 등등 끝없는 개념들이 등장한다. 매우 추상적이고 설명이 가능한 사고를 한다. 그러나 히브리 사고방식은 목자, 반석, 산성, 방패라고 설명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한 마디로 근원과 본질에 관심을 두는 사고방식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수혈에 대해서 철저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그 이유를 성경에서 들고 있다. 레위기 17장에 <생명이 피 가운데 있다>고 말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뒷받침한다. 히브리인들은 소위 직관적인(Intuition) 사고를 했다. 직관이란 사물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를 계속 흘리는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생명이란 핏속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런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의 피는 재생산된다.

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라. 세 번째 특징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다.

성경은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이해이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정황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경을 이해하려고 하면, 성경의 삶의 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모순덩어리일 뿐이다.

성경에는 <일부 다처제>가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무대가 아랍문화권이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10명의 아내를 둘 권리가 있다고 한다. 단 선임 아내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사인하도록 되어있다.

이것을 수혼법(Levite Law,25:5-10)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유대인의 한 종파인 사두개파들은 부활과 천국을 부정하는데(12:18-27), 그 이유는 천국에서 일곱 형제가 첫 형수를 만나게 된다면 누구의 아내가 될지 싸움이 벌

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유대인은 주변 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7:9-14에는 <고르반>이라는 전통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림이 되다.”는 뜻인데, 하나님께 드리려고 미리 떼어 놓은 재물을 일컫는 말이다. 참 좋은 전통이다. 수입이 생겨서 감사헌금이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살다보면 다 쓰고 나중에 드리려다 보면 남은 게 없어서 낭패를 볼 때가 있다. 그래서 고르반으로 따로 구별해 놓은 재물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전통이 오용되었다. 형제나 부모가 돈을 요구할 때, 주고 싶지 않으면 고르반 밖에 없습니다.”고 빠져나가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다고 하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시간 구체적인 적용 A. 구약 / 창조 신앙(1).

 

1.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즐거운 시간이 온다. 이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넘어지기 잘하는 문제가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창조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생활이다. 실전에 임해보자.

2. 창세기 1:1-31 :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인이 되신다 란 주제를 가지고 있다.

   a.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1:1).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신앙의 책이다 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까 과학적 접근이 옳지 못하다는 말이다. 신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분명히 고백적인 말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태초에 관한 창조와 타락]이란 책에서 사탄이든 하나님이시든 둘 중 누군가가 한 말이다. 태초에 있던 분이 아니고서는 태초에 대하여 말할 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자유로운 긍정이요, 자유로운 시인이요, 자유로운 계시이다.” 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창조기사는 종교적인 언어이고, 기독교 유산이 되었다.

   b. 하나님은 만물을 선하게(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창조하셨다(1:4, 10, 12, 18, 21, 25, 31).

좋다, 혹은 선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선하다는 말은 제 구실을 하는 것 말한다. 빛이 선한 역할을 하려면 말아래 두어서는 안 된다. 높은 곳 등경 위에 있어야 한다.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면 악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선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치지 못하면, 그는 악한 선생이다. 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악한 학생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선하다는 뜻은 만물이 모두 다

우량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c. 하나님은 지구를 선물로 인간에게 맡겨 주셨다(1:28).

세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점이다. 선물과 뇌물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선물은 조건 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뇌물은 조건이 붙어 있는 낚싯밥과 같은 것이다. 김영란 법은 모든 공

직자가 10만 원 이상의 돈을 받는 것을 뇌물로 규정했다.

   d. 하나님은 그 자신을 그의 피조물에 연결시키신다(1:26-27).

이 주제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해 책임적인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의미이다. 무신론자들은 이 세상이 문제투성이라며, 그래서 하나님의 부재를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세상, 인간이 외로운 주인처럼 두려움과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도 있다. 혼자처럼 보이지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돌보시고 지키시는하나님께서 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의 사람들이다. 누가 삶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일까?

   e.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만물의 주인이시다(1:1-31).

이 주제는 이 세상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다.”는 하나님의 주장을 말한다. 이 하나님의 주장은 우리 인간의 태도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모든 것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유권은 불안정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나안 땅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그 대표적이다. 유대민족은 약 2,000년 동안 유랑민족으로 (AD. 70-1948) 지금 그들은 이곳은 우리 땅이다.”고 주장한다. 보통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 역시 하나님의 소유이다.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옛날에는 자신의 머리털 한 오락도 부모님이 주신 것이니 함부로 깎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처럼,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개인주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너희는 내 것이다.”고 분명히 밝힌다. 바울은 너희 몸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였다. 내가 가진 재능, 시간, 소유는 그 참된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f.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까닭이다(1:26).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라틴어로 가면(mask)을 뜻하는 persona를 사용한다. 이 말은 어떤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인격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와 교제를 원하셨고, 그 유일한 대상이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란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이 주제는 인간이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작(masterpiece)이라는 의미이다. 시편 8은 인간을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말이

.

   가. 인간은 땅에 충만하도록 부름받았다.

이 주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가득 채우라는 말이다. 성경은 자식을 여호와의 기업이며 상급이라고 말씀한다. 병든 인간이 문제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로 가득 채울 때, 세상은 더욱 행복한 낙원이

될 것이다.

   나. 인간은 땅을 정복하도록 부름받았다.

종종 오해받는 주제이다. 환경오염과 자연파괴가 인간 중심사상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충실한 관리자가 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만물이 제 자리에 있도록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라는

말이다.

   다. 인간은 땅을 입히고 갈고 보존하도록 부름받았다.

세상에 대한 충실한 청지기 상을 강조하는 말이다. 청지기 정신을 강조해야 한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나 주인의 뜻대로 살림하도록 관심과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인간은 땅을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다. 인간은 세상을 관리할 경영자로 위임되었다. 인간만이 아니라, 전체 세상을 위해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시 청지기로써 역할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g. 인간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자유를 누린다(1:29-30).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자유라는 말이다. 도덕적,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2장에는 인간의 조상들이 자유를 어떻게 행사했는지 웅변적으로 말한다. 저주와 파멸로 가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다. 4세기에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사이에 자유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다시 16세기에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에 또 다시 불거졌다.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물들지 않은 영아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방정환, 어린이 예찬). 탕자가 타락의 길에서 아버지를 향한 것은 자유였다고 루터는 죄와 죽음을 택할 자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과 구원을 택할 자유는 인간에게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은혜아래서는 제한된 범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5살짜리 아이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차도로 뛰어갔다고 하자. 어머니는 달려가 아이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어머니의 손 아래서 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셋째 시간 : B. 신약 / 교회 생활(고전 1:1-15:49). 하나님의 백성들도 세상 한 복판에서 살고 있다.

 

   1. 성경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문서이다.

성경은 글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까닭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인 때문이다.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인 때문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진

공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삶 속에서 말씀하신다.

   2. 미국 시카코 대학의 Adler 교수는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How to read a book?] 이란 책에서, 책을 읽 는 3가지지 목적을 말했다.

   첫째는 즐거움을 위해서 인데, 만화나 소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삶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각종 정보지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로, 성경이나 교과서 그리고 인격훈련서 등이 해당된다고 했다.

모든 독서는 중심점이 있다. 우리는 단락마다 중심점이 무엇인지를 요약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3. 고린도 교회는 모든 지상의 교회를 대변한다. 고린도교회를 잘 공부하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4.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신학자로, 고린도서를 통해서 목회자로 이해하게 되었다.

   5. 고린도라는 도시는 그리스의 펠레폰네소스섬에 위치하는 고대 신석기 도시로, 주전 146년에 로마에 망했다가,

다시 100년 후 로마의 제대군인을 위해 재건되었는데,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다양성. 약점/문제투성이 가능.

아리스토파네스라는 시인은 고린인처럼 산다.” 로마속담 아들 낳아 고린도로 보내지 마라.” 고린도 비하발언.

   6. 고린도서는 당시의 교회가 문제 많았음을 말한다. 현실적 현상, 그러나 대처능력이 있다면 큰 문제 아니다.

    가. 교회내의 분파(1:11-13) : 고린도교회는 세례자 누구냐로 분파되었던 것. 성경해석과 다양성의 산물이다.

    나. 인간지혜강조(1:20) : 철학의 본산지의 특성. 합리성 강조.

    다. 부도덕한 일(5:1-13) : 어느 시대나 있었다. 교회가 자정능력을 필요하다. 미국교회는 동성연애자.

    라. 형제간의 소송(6:1-7) : 옳고 그른 것 세상법정으로 가져간다. 같은 교회에서 싸움. 경찰 누구 잡아갈까?

    마. 결혼과 이혼충고(7:1-15) : 독신문제, 이혼문제는 주의 필요. 삶의 자리를 이해해야 한다.

    바. 기독자의 자유(8:1-12) : 우상의 제물 등 먹고 마시는 문제들. Adiaphora “무관심,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

구원과 무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을 의미. 덕스럽게 하라.

    사. 모든 유혹을 물리치라(10:13) : 성도의 삶에는 마귀 유혹 있다. 매 순간 유혹은 찾아온다.

    아. 성만찬의 남용(11:20-27) : 애찬과 성만찬의 구별필요. 고린도 교회는 부자와 빈자가 친교 달리했다. 미리 애

찬을 먹는 습관 있음. 결과 성찬과 애찬을 분별 못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이것은 주님의 몸이다.

    자. 많은 지체를 가진 몸(12:12-28) : 교회의 성격, 다양성. 다양한 은사, 서로 존중. 풍성한 공동체 기대가능

    차. 사랑은 최고의 은사(13:1-13) :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 그중에서 사랑은 모든 은사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카. 부활한 몸에 대한 질문(15:1-49) :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 육과 영을 구별, 바울은 몸의 부활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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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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