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32호(2024. 6. 17. 월요일).
시편 시 69:16-18.
찬송 41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등의 주인공 제임스 딘(1931-1955)은 24년 7개월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중의 하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이다.
자신의 말처럼 그렇게 서둘러 자신의 삶을 살았던 까닭이리라. 영원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지 않을까? 더구나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박성완, 24, 6. 16.
2. “가나안 여자의 믿음(21-28절)”을 읽었습니다. 저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중에서 취향을 고르라고 한다면, 참여문학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순수시보다는 시인이 살고 있던 시대 상황을 배경에 둔 참여시를 더 좋아해온 것 같습니다. 물론 순수와 참여의 가치를 혹은 무게를 비교할 생각까지는 없습니다만, 진공상태에서 사는 삶이 아닌 이상, 자신의 삶의 배경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바탕에 둔 이야기가 더 인간답고 더 진솔하다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제 마음 속에 늘 답답하게 했던 문제가 머리를 치켜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한 여인의 믿음이 아니라,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라는 표제어가 저의 답답했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터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대립하더니 벌써 8개월 동안이나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성경에서의 이름은 블레셋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이후, 그리고 다시 1948년 이스라엘이 재 건국을 하게 되고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거주민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원수처럼 대립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는 기간이었던 주전 1세기에서 주후 1세기의 시절은 이런 갈등이 매우 당연시 되고 있던 때, 오늘 본문의 일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주님은 가나안 여인(팔레스타인 출신)이 귀신들린 딸을 고쳐보려고 주님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 한 사람 들어주는 사람이 없자, 더욱 큰 소리로 도와 달라 청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대면하였는데, 그 여인에게 와서, 정중하게 도울 수 없음을 밝힙니다. 그런데 거절 사유가 예수님답지 않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물러설 기미가 없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어먹습니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주님은 “여인이 네 믿음이 장하다.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올드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너 많다는 얘기도 들을 만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던 1979년도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집회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시돈지방은 물론 인근의 가나안 인들이 많이 모여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과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바라신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철저하게 구별 짓고 있는 모습에서 적잖이 실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에 들어설 기회까지 박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택하신 얘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창 12장에는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택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서 읽으면, 이스라엘민족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만을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 만민을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원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얘기하는 구원의 통로로 그들 이스라엘을 뽑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축복의 근원신학은 예수에게서 출발하기 때문에 희미하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의 근원신학에 크게 쓰임 받은 이가 가나한 여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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