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92.

시편 94:1-4.

찬송 22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70년대 연세대 영문과 이봉구 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영원한 세계의 명시선>의 첫 시로 R.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를 실었습니다. “때는 봄/ 아침 7/ 언덕엔 이슬방울 진주되어 빛나고/ 종달샌 하늘 높이 나는데/ 달팽인 가시나무 위에 도사렸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온 누리가 평화롭도다브라우닝의 이 피파의 노래는 천국을 옮겨 놓았습니다.

 

2. 오늘은 교회력 상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구약 사 51:4-6을 본문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까닭은 순간으로 마치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기 때문만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창조된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알게 하신 분은 야훼 하나님으로, “내가 베풀 구원은 영원하고, 내가 세울 정의는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사람들은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4-5).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을 똑 바로 쳐다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똑바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귀를 기우려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느 대기업 사장이 처음으로 봄 대심방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부인 권사님과 같이 교회 좀 나오시라고 권했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매 주일 골프장에 가면서 아내를 교회당 정문에서 내려주고 갔다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 천국에 가겠느냐고 하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처럼 그런 자세가 하나님께 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설교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는다고 합니다. 말씀의 맥락을 따라야 하고 그 중심점을 들어야 합니다.

 

하루살이처럼이 아니라,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라 하십니다(6a ).

어느 유명 설교가의 설교문을 보내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버릴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진공 속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핳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인식에 있어서도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학을 배울 때, 우리가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은 배경속에 있는 말씀/ Text in Context” 이 설교라고 말입니다. 하릴없이 하나님께서 채찍을 하신다 하며, 난데없이 복을 주신다 하실 리 없으니 말입니다. 그럴만한 배경을 가지고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도외시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가 있으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조국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외치던 은사가 있었는데, 그 배경을 무시한 어리석은 제자들이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영원을 품고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삶의 의미이고 목적입니다(6b ).

흔히들 이생을 순간의 삶이라 하고, 저승을 영원의 삶이라고 갈라냅니다. 마치 이생과 내생이 분리되어 있는 줄로 착각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생과 내생을 불연속성인 세계로 보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생에서도 저승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C. H. 다드는 예수에 의해서 세워진 새로운 현상으로, 제자들에 의해서 계승된 실현된 종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초월적 세계가 아니라, 예수의 정신과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그의 노름이론), 예수와 더불어 사는 한 영원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들처럼 완덕/完德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부족한데로 만족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우리 역사엔 그리고 우리 주변엔 적지 않음을 눈떠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고 있음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원과 정의를 누리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의 의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