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13호.
시편 98:4-6.
찬송 10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에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그런가하면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기운을 북돋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기운을 북돋는 일이다.”는 말을 남겼다. 요즘은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닮아간다 하겠다. 밝은 사람 곁에는 밝은 기운을, 우울한 사람 곁에는 우울함이 전해진다는 뜻이다.
2. 대림절 셋째 주일의 구약 습 3:14-20을 본문으로 “그 때 우리가 부를 노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스바냐는 아홉 번째 소선지자로 유다가 바벨론이 70년 동안 유폐되기 전에 활동했습니다. 다윗 왕조를 계승한 요시야 왕이 31년간 통치하던 번영의 시기에 활동했습니다(주전 639-608). 그는 나라의 멸망과 수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세상에 만연한 죄악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예언합니다(8절).
하나님의 심판에서 열외는 없다는 것이 성경의 중심 주제입니다. 죄악의 크기는 있겠으나 모든 민족이 죄를 범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죄악을 우상숭배라고 일축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우상숭배라는 죄목에 대해서 무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상숭배를 최악의 죄목으로 지정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배반한 것이고, 어리석게도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키운 부모를 학대하고 내쫓는 자식에게 연을 끊고 법원에 고발한 부모의 얘기를 읽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배반했다고 하면,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사회는 우상숭배자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런 죄와 죽음에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용서받은 기쁨을 노래 부를 날이 오겠다 예언하고 있습니다(14-16절).
죄의 용서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몇 년 전 치과 진료를 받으러 종로 5가의 한 병원을 갔는데, 예약 시간이 다 되어 마음이 조급해서 주차 된 한 외제차의 옆모서리를 긁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치료 후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쳤는데, 몇 백만 원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혹시 메모지가 바람에 날려 뺑소니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등 이었습니다. 주차장 관리인에게 차주와 연락을 부탁했고, 점잖은 신사분이 나왔습니다. 그리곤 자동차의 흠을 보더니, “괜찮습니다. 스프레이로 해결될 것 같습니다.” 용서의 기쁨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제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면, 상대를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바냐처럼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감격적 삶은 구원자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계심을 믿을 때입니다(17-20절).
제가 흑룡강성 오지로 선교여행을 갔을 때, 그곳 교우들은 오지에 사는 백성들은 정부의 시책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시정을 요구해도 그 지방 토후나 관리들이 고집을 부리면 바꿀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태평양의 한 작은 섬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숨어사는 패잔병들이 있었다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들려왔지만, 여전히 듣지도 믿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입니까? 구원의 소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되는 것입니까? 기쁨도 감격도 없는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제외되는 것입니까? 천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 복음을 들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믿음을 순전히 선물이라 고백했습니다(엡 2:8). 그래서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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