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03호.
시편 시 66:16-17.
찬송 30, 169,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글은 글쓴이의 삶의 배경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것입니다. 보에시우스의 다음 시를 감상해 보시지요.
“어떠한 운명에도 의연한 사람은, 거만한 운명을 발밑에 깔고, 행운과 불운을 올바르게 쳐다보며, 그 얼굴 태연하게 보존할 수 있네. 태풍 휘몰아치는 바다의 광포도, 큰 입으로 화염을 뿜어서 흑연/黑煙에 뒤덮인 활화의 베시우스 산도, 드높이 솟은 저 탑 때려치는 천둥 번개와 벼락도, 그 마음 혼란시킬 수는 없네. 가련한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잘 것 없이 횡포스럽기만 한 폭군들을 무서워 떤단 말이냐” 보에시우스, 정의채 역, 철학의 위안, pp.30-31.
2. 성령강림절 주일의 구약 성경 에스겔 37:1-14을 본문으로 “마른 뼈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인간의 삶의 현장을 직관하려고 합니다. 까닭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우리의 힘겹고 절망스러운 삶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절망 한 복판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인도하셨습니다(1-3절).
설교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망가트리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밖으로부터 던져진 실패와 질병 등입니까?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무관심, 무의미, 무감정, 무기력과 같은 것입니까? 밖에서 오는 외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무기력과 무의미라는 내적 문제가 우리 인간을 서서히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묘지가 있었는데 소홀한 관리로, 무덤에서 뼈들이 솟아날 것 같이 황량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몽골의 정신적 힘이었던 무당들의 사당 주변에는 동물들의 뼈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음산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땅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인도하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그것은 절망과 죽음의 땅을 생명으로 바꾸시겠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절망은 희망과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4-10절).
“마른 뼈들아, 야훼의 말을 들으라.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그러자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고, 뼈에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에스겔에게 명하시기를 “너 사람아, 주 야훼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그러자 모든 시체들이 제 발로 일어서서 큰 무리를 이루었다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은 우리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된 것처럼, 절망과 죽음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의 기운을 불어넣자 새로운 생명들로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른 뼈들에게 성령의 기운을 불어넣을 때, 죽어 백골이 되었던 뼈들에게서 힘줄이 돋고, 살이 붙고, 가죽이 씌워지고, 생기를 불어넣자 생명이 재탄생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11-14절).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마른 뼈들, 절망의 골자기를 뒹굴고 있던 뼈들은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이스라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얼마든지 마른 뼈들로 절망 한 복판에서 뒹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 앞에는 마른 뼈들이 뒹굴고 있고, 캄캄한 절망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새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 옛날 에스겔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오늘날도 절망과 슬픔 그리고 무기력과 무의미를 안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의미 있는 삶으로, 감격으로 가득 찬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시는 말씀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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