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33(2025. 1. 4. 토요일).

시편 102:26-28.

찬송 36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새겨 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이었다 한다. 훗날 이 말의 출처는 유대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시/ מִדְרָשׁ이거나 또는 페르시아 우화설이라 한다.

 

2, “믿음의 사람 모세의 특징(23-31)”을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일 것입니다. 이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모세를 주목할 수 있는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삶을 살필 때, 우리는 그의 기구한 삶의 자리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간략하게 그의 삶의 배경을 살피면, 그는 매우 혹독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모든 유대의 사내아이는 태어나는 즉시 죽임을 당해야 하는 무서운 법령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모친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어나자마자 곧 바로 죽어 흙에 묻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석 달 동안을 집에서 키웠고,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어린 모세를 나일강변 갈대밭에 숨겨두고, 매일 그 핏덩이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녀들은 귀부인들이 목욕하러 오는 지점에 모세를 숨겨두고 지키던 가운데, 애급 왕 바로의 딸의 눈에 띄어 양자로 왕궁에서 살게 되었고, 특히 누이 미리암은 유모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친 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채용하도록 소개합니다(2:1-10). 모세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노예로 살아가는 동족들의 처참한 현실에 마음 아파 하다가, 억울하게 고난을 겪는 것을 목격하고 애급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으나 발각되어 자기 민족 히브리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도망을 쳤는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게 됩니다(2:11-25). 그때부터 모세는 허허벌판에서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보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을 명령 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십계명을 비롯해서 많은 율법과 성전과 제사 등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민족의 지도자로 살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당신의 일꾼을 삼으실 때, 그 사람의 삶의 자리를 통해서 선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의지나 계획이 우리들 인간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게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당신이 일꾼으로 삼을 사람에게 아무런 막힘없이 순탄대로를 걸어가도록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은 꼬이고 뒤틀리고 먹먹하게 하는 역사의 고달픈 길을 걷게 하셨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태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출애굽의 과정들에서 직면하게 되는 심각한 위기들이 우리들 신앙인들의 가슴을 두렵고 불안하게 할 뿐 아니라, 절망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세의 일생을 살피다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일꾼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짊어져야 할 멍에는 언제나 무겁고 힘겨우며 절망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확신하는 대도 불구하고, 너무도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인생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연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모세를 비롯해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 그리고 훗날 영웅 대접을 받는 다윗 왕에 이르기까지, 이런 절망의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선택코스가 아니라 필수코스라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의 일꾼 혹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필수코스 앞에서 주저앉지 말아야 할 이유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

묵상자료 8632(2025. 1. 3. 금요일).

시편 102:26-28.

찬송 16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기성 시인은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시집을 냈다.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은 인류와 지구에 보내는 간절하고 숭고한 메시지를 담은 시집.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시대정신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담았다. 시인은 진실은 사라지고 허위가 일상화되어 사기, 파벌 싸움, 살인, 전쟁이 난무하는 현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아름다운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가져야 할 정신과 철학을 자연과 일상 에피소드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그가 보내는 80여 편의 시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자.

 

2, “믿음의 사람들의 죽음이해(13-22)”을 읽었습니다. 어제 묵상했던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에녹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자신들의 믿음을 의지하며 죽었습니다. 그것을 성경 기자는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본향을 향해가는 노정/路程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삶과 그리고 그 끝인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通過儀禮, rite of passage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였는가를 살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과 요셉의 죽음이해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종의 믿음의 시험을 받은 사람이라고 본문은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무려 100살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백 살에 얻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22:1-14).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아들이삭이 죽을죄를 지어서 그 형벌로 죽게 되었다고 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체념해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고 나옵니다(22:1-2).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우리들 인간의 죽음 앞에서 우리들이 흔히 고백하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황망/慌忙하다.”는 말입니다. 황당하고 허무하다 등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바쁘거나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죽음에 임하는 본인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어떻든 아브라함은 황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을 따라서 행동하기로 작정합니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 내내 이 무슨 저주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해 왔는데, 그 하나님으로부터 완전 배반을 당하고 말았구나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약속이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믿어도 될 것인가? 하고 의심을 불러올 질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대목에서 놀라운 진리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것은 19절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불멸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 부활한 새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신앙을 아브라함은 가졌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죽음 저편을 내다보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그 다음 요셉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축복한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을 떠날 것을 예언하고, 자신의 뼈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셉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며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꽃들이 만개할 것을 내다보았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런 죽음이해가 절실할 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