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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15 우리의 기도가 달라야 할 이유. / 막 10:46-52.

묵상자료 8675(2025. 2. 15. 토요일).

시편 106:22-24.

찬송 36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디언 수우족의 한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중략>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2. “여리고의 소경(46-52)”을 읽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불렀던 노래 중에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라는 복음가가 있습니다. 몇 구절을 1절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빗줄기. 자녀를 위하여 오래 흐느껴온. 이 세상 이 세상, 우리 위하여 죽으신 아기 예수께 우리는 무얼 배웠나? 왜 아직 서로 헐뜯고 평화 모를까? 왜 우리 눈은 이리 어둘까?” 이 복음가는 육신의 눈보다는, 마음의 눈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말일 것입니다. 여리고 집회를 마치신 예수께서 떠나실 채비를 하고 있을 때, 바디메오라는 거지 소경이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더 큰 소리로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주님이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시며 그를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들은 바디메오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님께 다가섰고, 주님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실 때,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셨습니다. 눈을 뜬 바디메오는 주님을 따라나섰다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기록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묵상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디메오는 주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너무 많은 것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을 구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단순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자비는 우리의 희망사항들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에 맡기는 일입니다. 주님의 자비나 주님의 은총이면 필요충분조건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대상에 대한 확실한 이해입니다. 바디메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삼신할머니를 섬기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모습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이나 두 손을 모아서 비는 모습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만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습니다. 셋째는 기도를 방해하는 환경을 극복한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를 막아서는 이웃들이 있었지만,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넷째는 주님이 부르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버렸습니다. 바디메오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겉옷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는 그런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은 아무짝에도 비교가 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다섯째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에게서 바로 이 점이 가장 약하다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구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과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 그리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해야 하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섯 번째는 주님의 자비는 육신의 바디메오의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온전한 몸과 영혼까지 구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영생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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