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09호.
시편 119:171-173.
찬송 53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잡한 완행열차 안에서 자리 양보를 받은 권정생은 양보한 여인에게 혹시 교회 다니느냐 물었고, 반색하는 그 여인은 시골교회 집사라고 했다. 어느 날 바쁘게 농사일에 정신이 없는데, 거지 한 사람이 구걸하러 와서 퉁명스럽게 내쫓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꼭 예수님을 닮아서 쌀 한 바가지를 퍼들고 나가보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대성 통곡을 했다 한다. 그 뒤로는 거지는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보이게 되었다 한다.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 pp.116-117.
2.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의 사도서간문 갈 5:1, 13-15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인이 누릴 자유”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자유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능력이며(Freedom), 동시에 억압하는 제한이 없는 상태를(Liberty) 말합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원죄/原罪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해석합니다. 이 거룩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된 자유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1절).
상해 임시정부를 폄하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친일파의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그들은 열혈 독립 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에 의해서 광복을 찾은 것이 아니라, 미국 등 세계열강의 공로로 해방을 맞았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조국을 되찾으려는 선열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열강에 의해서 자주권을 상실한 민족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넓은 틀에서 생각하면,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죄로부터의 자유라고 하겠습니다. 죄의 속박에 붙잡혀 있는 동안은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주차 실수로 다른 자동차에 흠집을 냈습니다. 목격자도 CCTV도 없었습니다. 그냥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피해 자동차에 저의 전화번호를 남겼고 수리비를 지불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둠에서 광명을 찾는 자유를 실감하였습니다.
주어진 자유를 육정이 아니라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명하십니다(13절).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거룩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고속도로(아우토반/ Autobahn)는 약 70%인 18,000km가 무제한 속도이지만, 권장속도는 130km입니다. 저를 초청한 바바리안 주의 작은 마을 노이엔데텔샤우의 베커 박사는 사랑하는 아내를 이 아우토반에서 잃었다 술회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지킬 매우 간단한 약속을 어긴 불법 차량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제한적인 자유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경계해야 하고 명심 또 명심할 것은 육정/肉情이라 했습니다. 존경까지 받던 권력자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육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세의 힘을 약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종노릇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처음에만 반짝 시늉을 낼 뿐, 곧 바로 권력자의 본색을 들어내곤 하였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 귓전에 소리쳐도 소용이 없곤 했습니다.
이웃 사랑은 모든 율법의 핵심입니다(15절).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두 가지 지켜야 할 대/大 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신 6:4-9),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에 대해서 질문을 해왔습니다. 마치 자신의 이웃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지식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눅 10:25-37). 저도 이 말씀을 들었던 어린 시절에는 저만은 예외인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철이 들면서 저 역시 사마리아 사람처럼 손을 내밀어야 할 이웃이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도, 손을 잡아주고 곁에 앉아 주어야 할 이웃들도 너무 많습니다. 어린 자식에게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든든한 부모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손을 뻗을 이웃들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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