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61호(2012. 3. 21. 수요일).
시편 136:1-4.
찬송 34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간 다음에, 이제는 서열을 정할 순서가 옵니다. 이 질문이 나오지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고 적으면 아우입니다. 이 때 아무가 되기 싫어서 나이를 올려 말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요. 서로 나이가 많다고, 내가 더 형님이라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의 옛 그림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의 화가 장승업의 작품 <3인 문연도>입니다. 3인 문 연, 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라는 뜻인데요. 주위에 온통 괴암괴석이 형형한 가운데, 노인 셋이 서 있는데, 언뜻 봐도 상당히 장수하셨습니다. 자, 도대체 뭐라고 다투고 계신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먼저 한 노인이 하늘을 가리키며 포문을 엽니다. “나는 어렸을 때 반고와 친하게 지냈어.” 반고가 누구냐 하면 중국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창조신입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이 생겨날 때부터 자기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입이 떡 벌어지는 허풍인데, 가운데 있는 노인이 집을 가리키며 응수합니다. 열 칸짜리 집안에 사람은 없고 나뭇가지만 가득한데요. 나뭇가지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뽕나무밭이 바다가 될 때마다, 뽕나무 가지 한 개씩 올려놓았는데, 그동안 내가 쌓은 나뭇가지가 저 집을 가득 채웠다네.” 세상이 뒤집어 지는 상전벽해가 일어날 때마다 가져다 놓은 나뭇가지가 열 칸짜리 집을 가득 채우다니. 노인들의 허풍이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러자 세 번째 노인이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바로 옆에 있는 복사나무를 가리킵니다. 탐스런 복숭아가 몇 개 열려 있네요. 노인이 말합니다. “내가 이 반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 버렸는데, 그 씨들이 쌓여서 곤륜산 높이와 같아졌네.” 이 말이 나이 다툼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반도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로 3천년에 한번 열립니다. 그리고 신선들이 산다는 곤륜산의 높이는 약 1천km니까, 도대체 몇 살이란 얘기일까요? 그런데 이 그림 속엔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복사나무 아래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신드렁한 표정으로 노인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앉아 있습니다. 이 소년은누굴까요? 우리 눈엔 소년으로 보이지만, 동방사기입니다. 반도를 예순 번이나 훔쳐 먹었다고 하니까 계산해 보면 이 때 나이 18만 살, 하지만 앞서 노인들에 비하면 어린 아이이지요. 그리고 노인들은 말만 들으면 그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을 허풍쟁이 같지만, 정체는 신선들이었습니다. 장승업은 중국의 소식이 쓴 <동파지름>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렇게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만큼의 지혜와 경험을 가졌다는 뜻이고, 그 자체가 좋은 책으로 가득 한 마치 도서관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과 아낌을 받았습니다. 그 위상이 많이 달라진 요즘, 이 그림을 보면서 한 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2월 10일 방송>
2.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은 110세를 일기(一期)로 마무리 됩니다. 인생살이, 우여곡절 많은 사람의 삶을 일컫는 말입니다.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는 인생살이를 하게 됩니다. 일생을 싸우듯 사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들게 오르막길을 가듯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어린 철부지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그 종착역에 도착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그 종착역에 도착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이 전자에 해당되고, 히틀러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 같은 사람은 후자에 해당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추앙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후자에 해당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반대로 실패한 간호 선교사 엘리제 셰핑 같은 사람은 전자에 해당될지 모릅니다. 요셉같은 이들은 미션(사명/목숨을 사용한다는 의미)을 가진 인생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높고 향기 나는 가치관을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을 위해서 가슴 설레는 매일 매일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일평생 평안한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요셉이 자신들의 죗값을 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놓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셨다.” 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요셉이 앉아 있는 화려한 총리석이 아니라, 요셉의 따뜻하고 소망에 찬 마음자리 말입니다. 그는 그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인생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목숨을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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