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085호(2012. 7. 23. 월요일).
시편 20:6-9.
찬송 34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둘도 없이 강한 어머니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자식 일 앞에서만큼은 천하무적이지요. 그러나 얼마 전 꽃그늘 아래를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다가, 어미 거미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엽란 거미 암 컷은 번식기가 되면요, 나뭇잎을 말아 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서 알을 낳는다고 하지요. 새끼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고 그렇게 밀폐된 공간을 만들었지만, 먹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입니다. 그처럼 어머니의 속이 자식들한테 다 뜯어 먹히고 텅 비어 보였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휘적휘적 꽃그늘 아래를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강단이 있던 몸이 어쩌면 저리도 가벼워 보일까요? 고은 시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들은 히말라야에 있었습니다. 6,500m까지 올라가서 산소결핍으로 어질병을 앓고 있었을 때, 파란 치마를 입은 삼십대 시절의 어머니 모습이 스치고 지나가더랍니다. 시인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직감합니다. “쪽파 두 단 담아온 검정 비닐봉지/ 빈 비닐봉지 도둑 바람에 날아올라/ 저 혼자 귀머거리 춤을 추더라/ 어쩌다가 울 넘어 흐지부지 가버리더라/ 어머니” 어머니를 값싼 물건을 담는 그 흔하디흔한 검정색 비닐봉지에 비유하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니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도리질할 염치가 없기 때문이지요. 염치를 좀 차렸으니 이제 그 은혜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김초혜 시인은 <어머니> 라는 시에서 아프게 말합니다.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뉠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같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뀌어 태어나면 어이하리”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5월 8일 방송>
2.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란 과연 존재할까? 이런 질문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번드르르하게 할 뿐 도무지 그 말처럼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행동할 마음조차 없으면서 남들 앞에서 올바른 사람인양 속이기 위한 위장술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언행일치(言行一致)란 인간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인간이라는 조건에서 우리는 지킬 수 있는 말과 지킬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진실 된 희망사항이라고 한다면,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구석도 진정성이 없는 말이란 아예 귀를 닫는 편이 나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한다고 해서 온갖 좋은 말을 옮겨놓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쩌다가 이런 사람들은 남을 현혹하는 말쟁이가 되었을까요?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속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단한 권위주의자들입니다. 솔선수범하는 일은커녕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명령만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설령 뭔가를 열심히 한다면 그 때는 보는 사람들이 많거나 그것을 빌미로 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경우입니다(4절). 그들은 허세에 관록이 난 사람들입니다. 우선 유난히 눈에 띄는 옷을 차려입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반말 투성이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신분이 높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리는 방법입니다(5-7절).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합니다. 선생칭호를 받아내려고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진짜 선생인지 가짜 선생인지는 알게 될 테니 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제대로 된 선생이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8-10절). 역시 가장 실속 있고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마땅히 할 바를 힘써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섬김의 삶이라고 하십니다(11-12절). 지금 우리들이 가진 모든 꿈들을 재점검해 볼 시점에 이르렀는지 모릅니다.
3. 은혜 중에 전교인 수련회를 포천 중앙기도원에서 가졌습니다. 교회된 우리 자신을 살피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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