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52호(2019. 8. 3. 토요일).
시편 28:1-2.
찬송 4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깨움에 산티아고는 여행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만이 그 최종의 무엇이 숨겨져 있는 곳을 정확히 가르쳐 줄 거라 생각으로, 마음이 내는 소리에 온통 귀를 기우립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 모래언덕을 오르던 중에, 마음이 가르쳐 주는 소리를 듣게 되지요. “내가 울음을 터트리게 될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그곳에 바로 내가 찾던 게 있을 거라”는 가르침의 소리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레 언덕에 올라선 뒤 산티아고는 수중에 있던 보석을 도둑들에게 다 강탈당하지요. 하지만 그 대신 그토록 간절히 찾아왔던 자신만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정확히 알게 됩니다. 그 때까지 지녔던 건 다 뺏기고 잃었지만, 대신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곳에 이르는 꿈을 이룬 것입니다. 산티아고의 그런 모습은 회사 중역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다 내려놓고, 대신 문학이라는 영원한 순례 지를 되찾은, 파울로 코엘료의 모습을 연상시키지요. 그러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산티아고처럼 코엘료처럼, 그동안 갖고 누렸던 것들을 다 철저히 버리고 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러면 연금술사의 말처럼 아니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간절히 소망하면, 천지간에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는 것, 직접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10년 전인 2004년의 소설 [연금술사]를 통해, 10년 동안의 비움과 채움 그리고 내 간절한 꿈의 위치를 돌아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7월 12일 방송>b.
2. 어제 말씀의 연장선상에는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등장합니다. 우리 인간사에는 주인공 위주로 엮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조연조차도 홀대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주인공 노릇을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연자의 역할과 모습이 더 관심이 가고 주목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인공 같은 조연자들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처럼 극적인 순간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수 있다는 진리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십자가에는 세 사람이 달려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예수님과 오른 쪽 왼쪽에 달린 두 죄수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나누는 대화를 취급하는 복음서들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서와 마가복음서에서는 십자가 밑을 지나가며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두 죄수가 예수님을 비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 좌우편에 두 죄수가 있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누가복음서만이 십자가상의 세 사람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며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밝히지 않지만, 한쪽의 죄수는 예수를 비난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자신도 살고 우리도 살려보시오.”라고 비난조로 말문을 엽니다. 그러자 다른 쪽의 죄수가 단호하게 막아섭니다. 우리야 벌 받아 마땅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으신 분이 아니냐면서 유명한 청원을 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 구저로 어린 아이들 설교 시간에 자주 불렀던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 to your kingdom.”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하시는 주님의 손을 향해 팔을 뻗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는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가장 짧은 시간동안 가진 믿음으로 구원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수를 닮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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