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61(2019. 8. 12. 월요일).

시편 30:1-3.

찬송 22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삶의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 되는 거예요.” [자살 가게]라는 오싹한 제목을 가진 소설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장 툴레의 작품인데, 자살률이 높은 프랑스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작가는, 자살이 아닌 살자는 메시지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티바쉬 가족은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자살가게를 몇 대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 누나 형 모두 음침하기 짝이 없지요. 그런데 막내 알랑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늘 낙천적이고 명랑하며 방실방실 웃습니다. 가족은 몇 대째 이어진 가업을 위협하는 알랑을, 어떻게든 음침한 성격으로 바꾸려고 애쓰지만,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바뀐 것은 늘 죽음과 불행 마음의 상처에만 매달려 살았던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빠는 자살가게 찾아온 손님에게,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맙니다. 이런 말이 술술 나왔던 겁니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의 그 이상 지나친 걸 바라서는 안 되는 거예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모든 것을 좋은 면에서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삶의 그 이상 지나친 것, 할 수 있는 것 이상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불가능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니까요.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건 불가능한 것이며,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 슬퍼할 필요가 없겠지요. 무엇보다 최선을 다한 삶은 누가 뭐래도,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문득 조선의 문신 송준이 남긴 시조 한 수가 떠오릅니다. “10년을 살면서 초가삼간 지어냈으니/ 나 한 칸 달 한 칸 맑은 바람 한 칸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곳 없으니 이대로 둘러 두고 보리라” 10년 동안 일해서 손에 쥔 것이라고는 겨우 세칸짜리 초가집 하나. 그마저도 달과 바람에게 한 칸이 내어 주겠다는 여유와 또 강산을 들일 곳이 없으니 밖에 두겠다는 호기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여유와 호기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33일 방송>

 

2. “사울이 다윗에게 질투심을 품다(6-16)”을 읽었습니다. 사람의 심리에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있습니다. 시기심이란 남이 가진 정당한 것을 샘낼 뿐 아니라 가지려는 마음으로 사돈이 논을 살 때 생기는 것 같은 마음이고, 질투심이란 내 것은 나만 가져야 하는데 남이 넘볼 때 생기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인들이 부른 노랫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千千)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萬萬)이라.”에서, 왕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바로 그 마음이 질투심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이런 시기심과 질투심은 부모와 자식 지간에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역사에는 왕자들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나, 부왕을 죽이려는 음모와 반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도 그 한 예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질투심이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면, 가장 무서운 범죄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울 왕은 여인들이 부르는 노래에 심기가 불편해지고, 질투심으로 불꽃이 일어나자, 다윗을 죽이려고 두 번씩이나 창을 던졌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더 불안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긴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천부장(千夫長)에 임명해서 궁궐에서 내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싸움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하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2인자>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역사는 1인자만을 기억할 뿐, 2인자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제2인자가 장수하려면 1인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충견(忠犬)이 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2인자는 권력을 노리는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리한 1인자들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2인자를 고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불행하게도 똑똑한 2인자로 사울 왕을 불편하게 했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셈입니다.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우리로써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1인자나 2인자는 불가피한 구성원일 수 밖인데, 서로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도울 수 있었다면, 사울도 다윗도 멋진 인생을 살았을 텐데 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판도 매우 시끄럽습니다. 한일 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자기들이 맡았던 분업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간다면, 서로가 관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번영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생의 정치라는 말, 함께 잘 사는 세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바로 그런 곳이 천국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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