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26호.
시편 시 69:7-9.
찬송 4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고맙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밥과 술을 사 주시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여행할 때 쓰라고 돈을 주시기도 합니다. 고마운 일들을 꼽으라고 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제가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는 때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조병준,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p.12.
2. 사순절 다섯째 주일의 사도서간 빌 3:4-14을 본문으로, “크리스천의 인생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짧은 인생 코스를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크리스천다운 인생 목표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사울(희망이라는 뜻)은 성공과 출세에 확신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델이었습니다(4-6절).
저의 이종 조카 형제는 첩첩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지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새로운 인생을 산다 전해왔습니다. 가문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엔 열린 문이 많다 말합니다. 사울도 그런 루트를 향해 달리던 인물이었습니다. 출세가도로 가는 길을 찾아냈고, 촌음을 아껴 배우고, 인맥을 쌓고, 앞서가는 지름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불분명한 헛소문에 귀를 막고, 패배자의 길을 거부합니다. 제 주변에는 이런 인물이 제법 많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 는 얘기는 꿈이 아니라, 성공가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뚜벅뚜벅 실천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승리의 문입니다. 내세울 배경도 필요하고, 신분과 계급도 적당히 받쳐 주어야 하지만, 결과만 좋으면 모든 약점들은 다 쉽게 묻혀버립니다. 기독교도들을 색출 처단하며 성공 스펙을 쌓았던 사울의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작은 자라는 뜻)은 자신의 목표들이 쓰레기처럼 보이고 새로운 목표가 보였습니다(7-10절).
성공의 9부 능선에 이르렀을 때,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성공의 스펙이며 영광들이 더럽고 추한 배설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한 무더기의 배설물과 찬란하게 빛을 뿜는 보물들이 나란히 보인 것입니다. 더 이상 비교하고 저울질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음침한 무덤 문을 여신 주님에게서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갖 힘으로 쟁취하는 역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내어주는 위대한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인간 중심의 율법에 의한 공로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은 것입니다. 뺏는 기쁨이 아니라 주는 기쁨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도가 붙잡았던 유일무이한 희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11-14절).
여러분에게 가장 기대되는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아직도 일확천금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까? 세상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크고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보시면 어떨까요? 흔한 말로 “생각하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생각하기에 따라 180도 다르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움과 원망으로 생각하면 세상은 어둡기 짝이 없지만, 이해와 사랑으로 생각하면 아름답고 밝기만 하다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인생을 바꾼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게는 특별한 큰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만주 큰 아버지”입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오신 할머니를 작은 부인으로 삼으셔서 낳은 자식입니다. 그 뒤에 저의 할머니가 아들 셋을 줄줄이 낳으셨습니다. 만주 할머니 덕분에 할머니는 예수님을 믿었고, 고맙다며 보듬어 주셨습니다. 온 가족이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3. 저는 매월 첫째 주일엔 주성청각장애인 교회(우슬초목사 시무)에서 설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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