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19.

시편 시 68:19-21.

찬송 41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콩밭에 콩이 나고, 팥밭에 팥이 난다.’ 는 격언이 있다. 밭은 갈아도 거기에 뿌려진 씨앗에 따라 여러 가지 곡식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씨앗은 다만 식물이나 동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있다. 그래서 인류라는 유개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이라는 종개념이 생긴 것이다.” 지동식, <돌 세 개>, p.92.

 

2. 사순절 넷째 주일의 복음서 누가복음 15:1-7을 본문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수도 없이 들었던 말씀임에 비해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다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순종하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두고, 말썽꾸러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에서 상식을 파괴합니다.

 

성경말씀 역시 그 배경을 주목해야 합니다(1-3).

최근 유튜브 방송에 나오는 논객들이 배경을 무시하고 상대를 난처하게 하는 말을 하는 우를 자주 범하곤 합니다.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서 일단 충격요법을 택하는 것 같으나, 이런 논란은 하루 빨리 개선되도록 시민들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한 마리 잃은 양> 비유는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이 죄인들을 가까이 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그런 배경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한 종교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소문난 죄인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식사까지 함께 하는 것에 화를 내는 그들을 향해서 마음먹고 하신 비유였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순종하는 99마리 양과는 달리, 말썽꾸러기 한 마리 양을 비유의 한 복판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여기 이 한 마리 양을 주목하시고, 이 한 마리 양에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과연 한 마리 잃은 양에 대해서 관심가지는 세상일까요?(4-5).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자유 민주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 소수의 의견이나 주장이 묻혀버릴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에서는 소수의견이라는 이름으로 밝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991이라는 수적인 대결은 초라하고 비참한 현실을 대변할 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가치가 없어 보이는 한 마리 양을 그리고 모두가 외면하는 죄인 한 사람을 찾고 찾으시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죄인 한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라는 뜻과, 다른 하나는 같은 죄인으로써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울고 있는 양 한 마리, 곧 회개하는 죄인을 기뻐하신다고 말입니다(6-7).

우리는 양 무리에서 이탈 혼자서 느끼는 온갖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양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비웃음을 받게 된 죄인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젊은이가 잘못을 저지르고 도피처로 군 입대를 선택했는데, 아주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빠른 시간에 남한산성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누이가 저를 찾아와서 헌병대장에게 탄원서를 써 달라는 것과,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선처를 구한다는 입장문을 받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갑자기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벌써 40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청년은 풀려났고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때, 은총이라는 말과 연민이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넘치고 넘치는 사랑인 은총과,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시는 사랑인 연민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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