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19호(2024. 12. 21. 토요일).
시편 100:1-3.
찬송 45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개>라는 시는 칼 샌드버그와 헤르만 헷세의 것이 유명합니다. “작은 고양이의 걸음으로 안개는 온다. 조용히 앉아 항구와 도시를 허리 굽혀 바라본 뒤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의 샌드버그의 시는 고양이의 몸짓으로 안개를 표현하고 있다. 헤세는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온갖 나무숲과 돌은 고독하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모른다. 모두가 혼자다. 세상은 나에게 벗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생이 아직 밝았을 때엔 그런데 이제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중략>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인생이란 고독한 존재. 아무도 타인은 모른다. 누구나 혼자다.” 안개가 우리들 인간의 삶을 혼미케 하고 외톨이로 만드는 불청객 정도로 그리고 있다. 참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각들이다.
2, “경고와 교훈(17-25절)”을 읽었습니다. 유다서는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은 사도들은 아니었으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를 믿게 되었으리라 추론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에 만연한 비도덕적인 이단자들, 특히 영지주의 자들에 대해서 교회를 보호할 책임의식을 가진 점을 대변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이단들에 대해서 경고와 함께 흔들리는 교회에 교훈을 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상의 하나로, 기본적으로 이원론이 대표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영과 육은 도저히 절충도 화합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영은 선하나 육은 악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비록 도적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영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할 정도로 능력이 있어서, 구원받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지/靈知를 획득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영지주의의 주장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면, 반드시 배격당해야 할 주장이지만,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런 주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다는 이런 이단자들에 대해서 교회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며 그들의 잘못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며, 둘째 자신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며, 셋째 성령을 따라 살지 않는 자들로, 넷째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단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권고합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설 것과, 둘째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힘써 기도할 것, 셋째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며, 넷째 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섯째 죄악의 불구덩이에 빠진 자들을 구해내고, 여섯째 본능적인 욕정에 빠진 사람들을 미워해야 하지만,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라고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영광스러운 날에 흠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전형적인 말세지 말의 교훈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흔들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습니다만, 그 첫째는 신앙의 근본인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진리를 분명히 붙잡지 못하는 점이고, 둘째는 이런 신앙은 우리 인간 자신의 지혜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우리가 힘쓰고 끝까지 바라볼 신앙의 대상은 인간의 간교한 술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신앙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는 힘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는 것임을 알고 간구하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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