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03, 327장. “一年之計 在於春이요, 一生之計 在於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년 설계는 이른 봄이 좋고, 일생 설계는 어린시절이 좋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롭게 살기를 바랍니다만, 作心三日이 되곤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새로운 삶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기억하는 것이 새로운 삶입니다. 새로운 삶이란 세례로 시작되는 삶을 말합니다(5절). 세례라는 것은 기독교인으로 사는 첫 단계를 말합니다. 세례란 “물로 씻다. 물에 잠그다.”는 뜻입니다. 죄를 씻는 세례였고, 죄에 죽는 세례였습니다. 이런 세례의 모형은 유대인의 할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생후 8일된 남자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를 내용으로 합니다(창 17장).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할례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고,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을 가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할례의 목적과 세례는 일치한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태어남(혹은 거듭남)의 가시적인 행위가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례 받은 이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고 말입니다. 세례 받은 이는 새로운 삶을 살 준비가 끝난 사람입니다. 새롭게 살기 위해서 세례의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새롭게 살기 위해서 좌우명을 정할 수도 있고, 삭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결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새로워지려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새로워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요약해서 죄악입니다. 죄를 씻든지, 아니면 죄를 죽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자는 날마다 죄와의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힘든 싸움입니다. 죄와 싸우는 한 그 사람은 새롭게 살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붙들고 일어나는 일입니다. 세례의 두 번째 내용입니다. 세례에 물속에 잠그는 죽음의 요소가 있는가 하면, 물 위로 다시 올라오는 생명의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세례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롬 6:3-5).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세례를 기억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새 옷을 사 입고, 새 집에 사는 것이 새로운 삶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과 삶의 목표가 새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새로운 삶인 때문입니다.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새롭게 산다는 말은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야 말로 이런 우리의 일상을 늘 긴장하게 만들고, 의미 있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자리에서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상 죄를 죽이는 것이나, 죄 없는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넉넉히 가능한 일입니다(롬 8:37). 이것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불가능한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고후 5:17). 참된 신자는 날마다 세례를 기억하며, 날마다 세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의의 부활에 참여하며 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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