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86호.
시편 시 39:3-5.
찬송 2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요, 쌀이나 액체의 양을 잴 때, 한 홉 두 홉하는 홉이라는 단위가 있지요. 한 홉은 목마른 사람이 단숨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 논 한 마지기할 때의 마지기는, 하루 동안 열심히 일해서 갈아엎을 수 있는 땅의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었다고 하네요. 사람마다 단숨에 들이킬 수 있는 양이 다를 것이고, 하루 동안 해 낼 수 있는 일의 양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하고 정밀한 현대 사회에서의 도량형으로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긴 했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지극히 사람 중심이었던 것 같지요. 그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케 했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듭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10월 18일 방송>
2. 교회력 마지막 둘째 주일의 구약성경 단 12:1-3을 본문으로 “지혜로운 자, 어리석은 자”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80년대 초에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미국 신학대학원에 유학할 때, 한국의 군사정부에 대해서 쥐죽은 듯 지내는 한국 교계 지도자들을 성토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역사의 한 복판에 사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서 관망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를 느껴야 했습니다. 설교가 감시당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에 무차별 구금되고 삼청교육대를 선전하던 시절 말입니다.
시련을 겪을 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구별됩니다(1절).
사람에게는 겉마음과 속마음이 있습니다. 상황이 힘들고 급할 때는 곧 위기의 순간에 속마음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가장 많은 생각을 품은 것이 속마음이고, 사람들 앞에서 꾸미는 마음이 겉마음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묵시록이라고 불리는데, 역사적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벨론 포로기의 힘든 시절에 나온 묵시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표제어가 <끝날>이라고 돼 있습니다. 세상 끝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살이는 시련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로병사가 모두 시련의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최악이며 최후의 시련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성경은 세상 끝날 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시련은 모든 사람들 앞에 닥쳐올 것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인 종말이든 이런 시련을 당할 때를 위해서 삶의 순간순간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대로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절망의 한복판에서 영생에 이르는 지혜자와 수치를 당할 어리석은 자가 나올 것입니다(2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입구에는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관리자가 없는 듯 보이는 공동묘지는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뼈들이 불거져 나올 것 같았고,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더 황량한 절망에서 사람들이 깨어난다 말씀하십니다. 최후의 부활의 아침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종류의 사람들이 보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영생의 부활을 하는 사람과 영원한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부활하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이 최후의 부활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 이외에 다름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구원은 물론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3절).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조금씩 형편과 처지가 다를 수 있지만, 삶의 얘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크롬웰 장군의 삶이나 밀 이삭을 도리깨질 하는 촌로(村老)의 삶이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과 방향에 따라서 그 최종 목적지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궁창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과 그와는 정반대인 부끄러운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빛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천국에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힘들고 연약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야말로 천국에서 살기에 합당한 인물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나라가 천국인 때문입니다. 디킨즈의 스쿨이지 영감이 재산을 포기한 이유가 예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11. 28. 대림절 첫째 주일] 나귀 새끼를 타신 메시아. / 눅 19:28-40. (0) | 2021.11.28 |
---|---|
[2021. 11. 21.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 주일] 아름답고 아름다운 권면. / 유 1:20-25. (0) | 2021.11.21 |
[2021. 11. 7. 교회력 마지막 셋째 주일] 올바른 헌금관. / 막 12:41-44. (0) | 2021.11.07 |
[2021. 10. 31. 성령강림절 후 스물세째주일]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 / 히 9:11-14. (0) | 2021.10.31 |
[2021. 10. 24. 성령강림절 후 스물두째 주일]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 렘 31:7-9. (0) | 2021.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