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27호.
시편 시 119:33-35.
찬송 24, 35, 5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젯밤에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유심히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까 북극성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북극성처럼 멀리서 빛나는 사람이 있고, 또 곁에서 가로등처럼 환하게 주위를 밝히는 사람이 있지요. 가끔씩 혼자 된 것 같아서 기운이 빠져 있을 때, 그런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만나 다시 기운을 얻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가로등 같은 사람일까? 별 같은 사람일까요? 어떤 유형이든 제 자리에서 빛나기만 한다면, 모두 우리 삶의 나침반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월 29일 방송>
2. 주현절후 넷째 주일의 사도서간 고전 1:18-31을 본문으로 “십자가의 이중적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에게는 아킬레스건처럼 너무 아픈 구석이어서 숨기고 싶어 하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와 그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할 뿐 아니라(고전 2:2),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갈 6:14)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에 무슨 마법같은 힘이 있을까요?
십자가는 어리석은 선택입니까? 아니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까?(18-24절).
사도 바울은 1세기의 기독교 공동체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우회적으로 물은 것이 아니라, 직설적 화법으로 묻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지혜로운 길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일입니까?” 십자가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가장 치욕적인 사형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그 당시에 가장 지식인이라고 하는 헬라인들은 십자가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말했고, 가장 신앙심이 깊다는 유대인들은 부끄럽고 거리끼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질문을 여러분에게 하겠습니다. 십자가는 여러분에게 어리석고 부끄러운 방법입니까? 아니면 인간을 살리는 지혜롭고 은혜로운 방법입니까? 만일 전자라면 여러분은 십자가 없이 살아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려면 후자를 택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할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인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첫 번째 능력은 육적으로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25-28절).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무명인이 유명인으로 바뀌었고, 무식하던 사람이 유식한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들 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으나 훗날 아볼로라는 지도자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예수 믿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풀무원을 설립한 원경선 선생님은 학력은 초등학교가 전부지만, 예수 믿고 바른 농사꾼을 키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풀무원을 세워 많은 농어촌 지도자들을 양성, 우리나라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유엔으로부터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굿네이버스>를 창립한 이일하목사는 작은 고아원을 돌보다가 세계적인 고아원을 세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지려는 각오로 살았던 모델같은 인물들입니다.
십자가의 두 번째 능력은 영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29-31절).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며 믿고 삽니다. 그러나 검증이 필요한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십자가가 무엇인지, 왜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십자가를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라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의 도구를 친히 짊어지시고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없애는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3. 오늘은 협동목사로 있는 왕십리루터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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