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2000.12.27, 수요일)
성경말씀 : 살전 4:13-18.
찬송 : 460장.
제목 : 죽음을 사랑하라(?).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어제 오전 11시 50분, 우리의 사랑하는 고 김성일장로님이,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그 동안 가족까지도 잘 모를 만큼 육신의 아픔이 컸었다는 게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난 추석절에 옥상에서 내려오다 계단 밑으로 떨어진 후, 인대파열로 고생하시는가 했는데, 소화가 안돼는 등 위장 장애로 계속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변함없이 교회와 병원(자원봉사활동)을 오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연약함으로, 지난 한 주간동안 집에서 힘든 시간을 가지시다가 24일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 끝내 우리 곁을 떠나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는 28일 오전 11시에 옥수동루터교회장으로 장례예배를 드릴 예정입니다. 오늘 저는 한 인간의 삶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혹시 이방인처럼 느껴지실 분에게는 미안한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깊이 생각해 보면 무관하지만은 않은 주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저는 김장로님과 1975년부터 가깝게 지냈습니다. 실개천이 흐르는 실향 난민촌이었던 옥수동 자택을 방문, 족보도 없는 강아지를 선물 받았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서울 임마누엘 교회를 도봉동으로 이주하고 천막교회에서 5개월을 지낸 후, 장로님께서 감독하시며 지은 오늘의 도봉교회 교육관과 사택으로 이사하던 기쁨도 엊그제 같습니다. 부산 신일교회 개척자로 연고도 없는 부산 개금동으로 내려가서 첫 임시교회를 짓던 때나, 본당을 다시 짓던 때에도 참여하셨고, 인생의 선배로써 저를 격려해 주셨던 것도 엊그제 같습니다. 장로님은 우리 교단과 많은 일을 함께 하셨습니다.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이나, 루터신학대학교 본관과 교수 사택, 기숙사를 짓는데 참여하셨고, 선교사 사택과 베델회관을 짓는데도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그 뒤 장로님이 계시는 옥수동교회로 옮겨와서 18년을 함께 교회를 섬기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옛날 건축 자재와 건축 기술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회당이 전체적으로 부실하여서 매년 연례행사처럼 손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워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고행하는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처음 몇 년동안은 교회당 수리에만 정신을 쏟아야 했습니다. 내부를 교회 생김새에 어울리도록 인테리어 공사를 하였고, 종탑을 전면적으로 수리할 때, 장로님과 함께 땀을 흘렸던 것도 엊그제 같습니다. 어려운 교우들을 독려해서 당시로써는 엄두도 낼 수 없는 150여평에 달하는 교육관과 사택을 지을 때에도 장로님은 많은 용기와 사랑의 수고로 앞장 서 주셨습니다. 교회가 매년 헌혈을 할 때에도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헌혈에 동참해서 다른 교우들에게 참 사랑과 섬김을 본 보여 주시던 장로님, 장애자 올림픽이 있은 다음 해부터 자원봉사(호스피스 케어) 훈련을 전문 기관에서 받으신 후, 곧 바로 충북 음성의 꽃동네를 시작으로 서울대병원 그리고 정원 노인요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새로운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4. 장로님은 강직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재정부장을 맡으셨을 때는 너무도 엄하시게 재정을 관리하시는 때문에, 교사들이 힘들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입니다. 아마도 장로님은 옛 세대가 다 그러했듯이 아끼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장로님의 삶의 역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1951년 1. 4 후퇴 시에 단신 월남하셨는데, 이유는 공산당이 싫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남한 군대에 입대하셔서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으시고 수 없이 많은 전투에 참가하셨으며, 휴전을 얼마 앞두고서 부상을 받으셨습니다. 일가 친척 하나 없는 남한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이들의 특징중 하나는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환경이 자신도 모르게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5. 제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이 창립한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기꺼이 창립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삶과 죽음, 그것은 서로 다른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라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자원봉사자 훈련에 기쁘게 참가하셨고, 배운 대로 몸과 마음으로 실천에 옮기기를 12년, 장로님은 삶을 죽음처럼 사셨고, 죽음을 삶처럼 짊어진 말년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낯선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서 죽음의 얘기는 일어나고 있고, 매일 뉴스를 통해 듣고 보는 친근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과는 동떨어진 다른 사람들의 얘기려니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듯, 죽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결코 염세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같은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산다.”는 말을 실감할 수가 없었는데, 요사이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는데(시90:10), 우리의 삶의 길이가 삶의 전부라고 하면 너무도 허망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죽어서도 말하는 이들을 볼 때, 어쩌면 죽은 다음에야 빛을 발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죽음이 전부가 아니고, 더욱 죽음이 한 인간의 끝이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6. 데살로니가 교회는 임박한 종말사상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눈으로 볼 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줄로 생각하고 염려하고 있을 때, 바울 사도는 죽음과 신앙, 죽음과 부활을 다시금 가르쳐야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보다 결코 신앙이나 생활에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일에 있어서 우선권이 주어져 있다고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죽지 않고서 주님을 만나지 못할지 모릅니다. 먼저는 자기중심적인 더러운 욕심을 죽여야 하겠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것을 죽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살려고 버둥치는 것을 죽여야, 주님께서 내 안에서 살아 계실 것입니다.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 삶에 충실할 것이고, 삶의 의미를 엮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죽을 각오로 살라는 결연한 의지를 배수의 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런 배수의 진을 치고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죽음은 아주 가까이 서 있습니다. 항상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지 않습니까?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때문에 살아도 죽어도 여전히 향기를 풍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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