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2000.12.30, 토요일)
성경말씀 : 벧전 3:1-7.   
찬송 : 286장.
제목 : 성경적 부부윤리.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난데없이 결혼식 찬송을 부르시게 되었습니다. 기혼자께는 여러분의 결혼식을 회상하는 기회로, 미혼자께는 결혼의 참된 의미를 새겨보시라는 뜻에서 그리하였습니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고,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약속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一心同體라고들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남편과 아내가 일심동체로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런 윤리가 합리적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결혼하는 순간에 자연적으로 이런 관계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 분이 있다고 한다면, 분명 큰 착오를 느끼실 것입니다. 20, 혹은 30년을 전혀 다른 가치관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하나의 가치관, 인생관으로 둔갑할 수는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맞추어 가는 일, 의논을 통해서든, 서로를 잘 관찰하며 협력하는 동안에서든, 이런 함께 살아가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3. 많은 젊은 신혼부부들이 겪는 문제중 하나는, 소위 주도권의 확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속담을 보면 결혼 후 3개월은 깨가 쏟아지지만, 3년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나머지 30년은 참으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말처럼, 이 주도권 싸움에 3년 혹은 10년을 소비하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주변의 어떤 분은 거의 20년이 가까이 되는데도 아직도 이 주도권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 보기에도 민망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은 일찍부터 부부간의 윤리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경의 말씀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그 권위에 복종하고 나서야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성경에서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에 그 첫 남자인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토대로 해서 여자인 하와를 만드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남자와 여자는 처음 시작부터 하나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궁금하던 내 분신을 다시 찾는 예식”이 바로 결혼식인 셈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함께 인생 길을 가는 동반자로 묶으시면서, 남자에게는 대표권을 주셨고, 여자에게는 동역권을 주셨습니다. 분명 1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존여비라는 잘못된 사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그런 악습아래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사상이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악습을 고치려는 노력이 일어났고, 불과 50여년 전부터 여성권익을 찾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녀에게 일할 수 있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고, 동일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헌법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평등권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고 잘된 일입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도권의 문제인 것입니다. 평등한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권리 같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이 바로 이런 평등이라는 주제를 신봉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웁니다. 이 때 가장 반겼던 사람들이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었고,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장은 보완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분명 사람은 그 인격이나 가치에서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능력과 역할에서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차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미성(美聲)의 소프라노를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이런 사람은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력이 없는 사람이 회계사를 하겠다고 발버둥친다면 곤란한 얘기가 아닙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재능에 따라서 할 일을 맡아야, 자신도 보람있고 남들도 괴롭지 않은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사장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며, 반대로 아무도 사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은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는 사장이 되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중간 간부가,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은 사원으로 그 기업체를 함께 꾸려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이런 의미의 역할 분담을 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남편에게는 대표권을 주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그 남편을 돕는 동역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둘 다 대표자로 행사할 수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까닭은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속담처럼 항상 분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표권자가 독재자형이라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는 경영자형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의논하고 함께 연구해서 최선의 길을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는 그런 대표자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 아내가 대표권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영국의 대처는 여성으로써 수상을 역임했던 이른바 여장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정에서만큼은 남편에게 좋은 동역자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이 산으로 올라가는 불행을 막는 유일한 길일지 모릅니다. 

5. 성경에서 왜 남성과 여성에게 이런 차별성 짙은 역할을 맡기고 있는가 하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반적으로 남성은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사고력을 가졌고, 여성은 감성적인 사고력을 가진 점도 한가지 이유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가 유세 중에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신문 사설은, 미국의 대통령이 자기 감정을 조정하지 못하는 여성 스타일이라면 어떻게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국가 비밀을 유지하면서 국가 이익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겠는가고 힐문했다고 합니다. 남성들의 냉정한 성품이 대표권자로서는 적합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옳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잘 이해가 될 때까지는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권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여성들이 이혼을 하겠다면 말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아내와는 평생 고통스런 투쟁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남편을 높이 세워 줄 수 없는 아내라면 그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와도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독불장군 이외에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 심한 표현이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남성들 혹은 남편들이 꼭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종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그런 남편과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편은 함께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을 귀한 친구와 동료로 아내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자신과 함께 행복한 삶을 나누어 가질 가장 가깝고 친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6. 주도권 싸움은 이미 끝났습니다. 성경은 대표권을 남성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가정과 사회를 위해서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동역자입니다. 대표권은 어떤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화려한 이름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멍에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가정들이 남편과 아내의 윤리가 지켜지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샬롬.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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