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2000.12.31, 주님의 날)
성경말씀 : 벧전 3:8-12
찬송 : 444장.
제목 : 사랑의 실천.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다사 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는 시간입니다. 여러 가지로 감회가 교차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젊은 여집사님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을 먼저 가지셨으면 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내 연약한 삶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 있었던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아직도 부끄럽고 모자란 자신을 바라볼 뿐이라면, 그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나는 감사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원망스럽게 생각하실 분이라면, 그래도 목사님이 해보라고 하니까 그 말 값이라도 하자는 심사에서 그냥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내 힘만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고백이며, 내 뒤에 누군가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다는 표현이기에 꼭 필요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오늘 주시는 말씀은 한 해를 마감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적합한 말씀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라는 말씀이 그렇고, “너희가 마음을 같이 하여”로 시작되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늘을 위한 말씀임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에게 형제와 자매가 된 이들은 비단 혈육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론 불 신앙 가운데 살고 있는 이들 까지도 포함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나 자신이 아닌, 나를 제외한 모든 이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참 좋은 친구들이며, 동료들입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때로는 자극도 받았고, 열심도 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마라톤너는 함께 다리는 다른 마라토너에 대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주변의 경쟁자 혹은 친구들이 없다면, 마라톤은 아마도 고통스러운 달리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의 거친 숨소리나 힘겨워하는 몸짓, 일그러진 표정들은 바로 자신의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될 때, 오히려 자신이 아닌 동료에게 사랑과 이해 그리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있어야 만이 자신의 길고 긴 마라톤의 여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 우리가 깊은 애정을 갖고 생각할 때인 것 같습니다.
4. “체휼하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의 곤경을 듣고서 돕고 구해 주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데, 윗사람은 아닐지라도 이웃의 어려움을 못본체 하지 않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생각하십시다. “불쌍히 여기며”, 이 말투는 제가 참 좋아하는 것인데, 누군가가 이런 글을 쓴 것을 기억하는데, “가족을 집밖에서 멀찍이 서서 바라볼 때 불쌍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처럼, 불쌍한 마음이 왠지 서글픈 말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서로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불필요한 다툼이나 신경전은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겸손하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그런 행동인데, 그게 말처럼 잘 되지 않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 점에서 언제나 낙제 점수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과 관계된 것이라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기 잘하는 사람보다는, 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자신은 감추는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친해질 수 있는 타입이 아닙니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대신 복을 빌어 주는” 그런 사람은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 와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그런 억지를 부리지 않고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마음으로 참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이 있습니다. 교활하고 음흉한 마음으로 겉과 속이 다른 그런 분이지만, 저는 그 분에게 성탄카드를 쓸 경우에는, 마음과 다르게 항상 “주님의 풍성하신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라고 적곤 하였습니다. 마음대로라면,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해야 진실하겠지요. 적극적으로 나를 헐뜯고 욕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어 준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성품으로 보아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복을 빌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불가능에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악마와 싸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요청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바로 이런 목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5. 우리가 의지하는 주님은, 의인에게 눈을 돌리시고, 귀를 기우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신나는 일입니까? 다른 누군가 아니라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의 눈을 우리에게 고정시켜 두신다고 하니, 그리고 우리가 말할 때마다 그 소리를 귀담아 들어 주신다 시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고 힘이 절로 솟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악행 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낯을 그들에게로 향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낯”은 죄인에게는 저주와 죽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복을 비는 사람들을, 비록 그들이 부족하고 허물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서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고 악행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보응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신 다는 것을 다시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지금 이웃에 대한 인색한 마음을 몰아내는 투쟁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들 이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마음은 원치 않더라도, 그리고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되더라도, 그들이 복되게 살아가도록 빌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행동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6.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고, 저녁 11시 30분에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립니다. 촛불로 드리며, 오늘은 특별한 의식문을 준비했습니다. 감사 예물도 그릴 예정이고, 새해를 위한 기도를 함께 드린 후, 각자 하나님과 나누는 새해를 살아가는 기도문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오늘도 의미 있는 시간들로 마지막을 채워넣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에게 보내 주신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점들이나, 허물들을 많이 보셨을텐데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주님 은총 가운데서 좋은 일, 기쁜 일, 감사할 일들이 많이 여러분과 주변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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