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2001.1.2, 화요일)
찬송 : 301장
성경말씀 : 벧전 3:13-17.
제목 : 선한 생활에 힘씁시다.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첫날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의미 있는 시간을 보     내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친의 3주기 추모 예배를 9남매가 모여서 드리기 위해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조카들의 노래를 듣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2. 성경에서 윤리적인 용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서 몇 차례 반복돼     고 있는 “선”, 혹은 “선행”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용어를 만날 때, 상당히 추상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선한 생활”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대답하는 이마다 각지 각색으로 말할 것입니다. 일정한 기준 혹은 말의 뿌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선하다느니(혹은 좋았다느니) 악하다(혹은 나쁘다)는 말은 분명한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시고 보시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4, 10, 12, 18, 21, 25, 31). 선하다, 좋았다는 말은 “제 구실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악하다는 말은 “제 구실을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낮은 좋은 것이고 밤은 악한 것이라는 말은, 이원론(서로 다른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이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만, 낮은 그 자체가 언제든지 제 구실을 하는 것에 반해서, 밤은 언제든지 제 구실을 못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인 낮은 낮의 역할을 하는 한 선한 것이고, 밤 역시 제 구실을 하는 한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적용을 해 봅시다. “아무개 권사님은 참 선한 생활을 하십니다.”고 했다면, 그 권사님은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어떻습니까?  제 구실, 혹은 제 역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선하고 좋은 일이라는 해석에 대해서 말입니다. 

3.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신다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고 훌륭한지 모릅니다. 누가 보든     지 보지 않든지, 묵묵하게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서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떠 올려 보십시오.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언제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역할은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살기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전가할 뿐 아니라 물귀신 작전까지 쓰면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적지 안은 게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이 저마다 제 구실을 다할 때,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 악한 것이 되곤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이니, “선한 행동”은 마땅히 가질 생각과 당연히 그렇게 행할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 중 어느 누가 있어 제 구실,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제 구실을 하도록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축하의 인사를 드리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저는 상받을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널리 모델을 삼고자 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4. 우리는 성도로써, 구별된 무리들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구주(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첫 번째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바 직분을 열심을 다해서 짊어져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위임된 일들을 충성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두 번째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할 수 있으면 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힘써 할 세 번째 일입니다. 이런 것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인은 귀만 커져 있거나 소리만 크게 내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듣는 것으로 족하고, 말하는 것으로 끝내는 사랑실천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엄청나게 큰 것을 해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평생동안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체 끝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형편에 맞게 시작하십시오. 제가 1979년도에 목사가 된지 3년 되었을 때, 몇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내 생활이 어려워도 나를 낳아 키워주신 부모님들(장모님 포함)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나보다 힘들게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찾아서 작지만 사랑의 관심을 보여주자고 하는 등. 저는 매우 미미한 섬김을 실천할 뿐입니다만, 제 주변에서는 참 자랑스럽게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선교하는 평신도 선교사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와 정기적인 물질로 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옷 한벌 사서 입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검소의 미덕을 수 없이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5. 사람답게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성도는 그래야 합니다. 미덥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망과 좌절을 겪는지 모릅니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그런 무관심의 대상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기 생각밖에는 마음의 여유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가고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여류 시인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저는 행복합니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행운입니다. 당신은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든든히 서 계신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그런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면 하면서 이 한 해를 살아가십시다. 물론 때로는 많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험담을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일축하십시오. 의례 그런 사람들은 그런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구실을 하게 될 때 별들이 너무 아름다운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세상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이런 하루로 채워져 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묵상에 참여하고 있는 김장호선생님이 지난 23일 유학지인 독일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2주 앞당겨 태어남으로 인큐베이터에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이 어린아이와 그의 부모님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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