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2001.1.4, 목요일)
찬송 : 438장.
성경말씀 : 벧전 4:1-6.
제목 : 지나간 때와 남은 때.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새해에 세우신 계획들은 잘 진행되고 계시지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배우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Excuse라도 할 수 있으니까, 잘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가장 무시하기 쉬운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인 것이겠지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삶의 내용과, 새롭게 살아가야 할 삶의 내용에 대해서 차별성을 갖도록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주의 할 말씀은 “지나간 때”라는 말과 “남은 때”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두 종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고, 그리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남은 시간이 그것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게는 제한된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그 제한이 각기 다를 뿐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지나간 때는 부끄러움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 성경의 준엄한 평가입니다.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연락, 무법한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인의 뜻을 따르던 삶의 내용들이 지나간 때의 모습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들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들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는 이런 범주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지나간 때의 잔재들이 남아서 괴롭힐 수 있습니다.
교회와 일상 생활 사이가 이중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기독자라는 사람들은, 지나간 때를 청산하고 오히려 남아 있는 시간을 새롭게 살아가려고 힘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나간 때의 일들에 발목이 잡혀서 허우적거리고 살아간다고 하면,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잔재로 인해서 남아 있는 때에 적지 않은 부담을 넘겨주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대 신앙 선배이신 바울 사도 역시 이런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괴로워한 흔적을 살필 수 있습니다(롬 7-8장). 분명한 것은, 지나간 때의 일들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를 옛 사람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집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매일 매 순간마다 자신이 이런 부끄러운 삶에서 돌아섰던 세례를 기억하는 십자가 성호를 그으라고 권고하십니다. 

4. 지금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기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남은 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에 멈춰 서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소한 일, 하찮은 일에서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때에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끌리는 것이 있고, 내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금년에는 신앙의 기본을 지킵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십일조를 드리는 일, 그리고 선한 일에 더욱 힘쓰는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목사님, 세상을 아직도 모르고 말씀하십니까? 주일을 성수하면 목이 잘리고 살아 남아 있을 수가 없는데도요? 십일조라니요? 몇 푼 받는다고 그 중에서 십일조를 뗍니까? 적금을 들어놔야 노후가 안정되지 않겠어요? 선한 일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더 이상 바보처럼 살아가진 않을테니까요. 누가 알아주는 일이며 상을 줍니까?” 이렇게 대답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목사님은 세상에서 사는 분이 아니라, 딴 세상 사람처럼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 생활은 신앙 생활이고, 일상 생활은 또 그렇게 적절하게 맞춰서 살아야 지혜로운 일이 아니냐고요. 우리는 그 목사님의 말씀에 대해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때에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와 자세에 대해서 낮선 것이, 어쩌면 하나님의 뜻에 훨씬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적절한 타협보다는 지나간 때를 청산하는 결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겪어야 할 가장 큰 도전이고 시련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남은 때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내용들은,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5.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저는 여러분에게 매우 어려운 권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나간 때로 옛 삶을 정리하고, 남은 때를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몸짓을 한다는 것이 때늦은 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히 믿어주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수지맞는 일이라는 것 말입니다. 처음 얼마간은 손해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으로 가슴 조일 수도 있을 것이며, 적금통장을 갖지 못해서 불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헛수고만 했다는 선행일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계산법보다 더 확실하게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채워주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생활로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자신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에게 실망을 주신 적이 없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날이 얼마인지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10년 혹은 1년 아니면 단 하루밖에 남아있지 안은 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뜻과는 다릅니다. 내가 하고픈 대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6. 주님께서 여러분과 오늘도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과, “내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는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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