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90(2001.1.6, 토요일)
찬송 : 446장.
성경말씀 : 벧전 4:12-19.
제목 :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스러운 의무입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소개 드렸던 치매를 앓고 계시는 권사님처럼 질병도 자기 십자가일 수 있고, 힘든 가족들 속에서 살아야하는 것도 자기 십자가일 수 있겠습니다. 피할 수 없는 멍에를 누구나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묵묵히 견디면서 이 짐을 짊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주시는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을 위한 고난에도 참예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런데 그 고난은 불 시험이라고 했으며(12절), 욕을 먹는 일이라고 했습니다(14절).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암시합니다(16절).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다. 주님을 위해서 불 시험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주님을 위해서 욕을 먹어본 일이 있는지, 주님을 위해서 부끄러움을 당해본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목사이면서도 이런 주님의 고난에 그리 자주 참예하였다고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많은 영광을 얻었고, 칭찬을 들었고, 유익을 얻었을 뿐입니다. 

3. 주님을 위한 고난, 지금 우리들에게 깊이 생각할 묵상의 주제로 주고 계십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 수고하실 전도사님과 선생님들과 함께 경기도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젊은이들이 많이 묻혀 있는 묘지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의 묘지로 개발된 듯 한데, 지금은 소위 민주 열사들의 성역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가끔씩 그곳을 찾곤 합니다. 삶이 단조로울 때나, 하는 일이 힘들고 의미를 상실해 가는 것 같을 때, 그곳에 가서 하나 둘 비문을 읽으면서 많은 충격과 도전을 받곤 하였습니다. 거기에 묻힌 분들 가운데는 인생을 특별하게 살았던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생각했다면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고난의 길을 일부러 찾아 껴안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죽음을 택했고 형극의 길을 내디뎠던 사람들입니다. 문익환, 전태일, 박종철, 천세응, 고정희 ………. 그들은 이 세상, 이 조국, 이 민족을 위해서 자신들의 뜨거운 피를 아낌없이 조국이라는 제단에 뿌렸습니다. 저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 저녁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문익환목사님을 묻던 날이었습니다. 모란 공원은 수 천 수만의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숨을 죽인 듯 조용하였습니다. 한 의로운 삶을 살다 가는 목사님을 천국으로 배웅하는 마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인자하기만 하셨던 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가 투사가 되셨습니다. 강의실 혹은 교회에서 만나 뵙던 목사님은 참 조용하셨고, 차분하셨는데, 불법으로 김일성을 만나고 노동자들의 선두에 머리띠를 띄고 앞장을 서는 그런 분으로 둔갑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몸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때문입니다. 기성 기독인들에게 조차 미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의 채플에서 어느 교수님이 설교하시면서 문익환목사님을 매도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목사도 아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연약한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했다는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4. 주를 위한 고난,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분들의 고난과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혹은 약자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구체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것, 이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사랑과 도타운 정으로 어우러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를 위한 고난,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짊어지는 고난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위해서 달음질하는 숨 가쁨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영광스럽도록 하기 위한 섬김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그런 일들을 힘써 찾아야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그 일에 매달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출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런 관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의 내용이 빈약하다면, 그럴싸한 허울 대는 곧 시들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내용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까지도 즐겁게 짊어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새로운 한 해가 다가 왔습니다. 한 젊은 준목님이 목회 계획서를 보내왔습니다. 목회 방향이라는 항목 중에는 생활보호 대상자 및 노인 선교(농촌 특성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을 위한 봉사를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생각이라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변치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의 이웃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난을 통해서 영광과 승리의 삶에 이르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결코 부정적인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도전과 희망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하는 긍정적인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난에 동참하기를 힘쓴다면, 분명 여러분의 삶의 내용은 진정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고난의 길은 매우 친근한 우리의 삶의 내용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기운차게 걸어가십시다. 주님께서 여러분 위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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