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32호(2012. 2. 21. 화요일).
시편 122:1-5.
찬송 1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세기 실학자 서경창이 자녀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중인 출신이었던 서경창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요. 백성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을 기록한 책들을 남겼습니다. 삶과 학문이 백성에게로 열려 있던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인지 읽어봅니다. “성인은,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하셨다. 이는 선악에는 응보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을 행하는 것은 한갓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 셈이다. 본래부터 선한 마음 가진 사람이 선을 행함에 미쳐서는 매번 저도 몰래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 훗날의 경사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로 능히 선의 마음을 두어, 한 가지 일이나 두 가지 일에 이를 행해, 이것이 오래 쌓이면 그 보답이 바로 남은 경사인 것이다. 하지만 비록 선한 마음이 있더라도, 만약 자기를 이롭게 하려고 남 해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실로 악이 된다. 어찌 남은 재앙에 응보가 없겠느냐? 나는 말한다. 선을 행함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선은 그 가운데 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 의리에 해될 것이 없다면, 시속을 따라도 괜찮다. 군자가 어찌 경솔하게 시속을 끊겠느냐? 하지만 진실로 시속과 한통속이 되는 것으로 통달했다고 여기는 것은 군자의 행실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시속을 멀리하고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군자의 마음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라. 착한 일 많이 해라. 이런 말 많이 하지요.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 혼자만 착하면 뒤처지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혼란에 대해 서경창은 이런 답을 내 놓았지요. “나는 너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을 쌓고 조화를 추구하되 시속과 한 통속이 되지는 않는 그런 군자가 되기를 바란다. 함께 가되, 휩쓸리지 않는 줏대를 지닌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월 23일 방송>b.
2. 사도 바울에게 최초의 선교사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한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유대교와 싸웠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처음과는 달리 구약의 아브라함의 신앙은 유대교에 이르러 율법주의 신앙으로 바뀌고 말았는데, 이 율법주의가 기독교 진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인본주의처럼 둔갑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서 보려는 인간 중심주의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 중심, 다시 말하면 인간이 아닌 하나님 당신의 구원의 계획과 구원의 행동에 의해서만,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만이 다시 살수 있다는 진리를 전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사도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명령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귀한 신분을 얻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신분에 걸맞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권을 남용해서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보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공로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자신만만해 했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에 비해서 훨씬 더 자랑할 것이 많은 자신을 뽐내듯 말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런 자랑거리들을) 다 해로 여길 뿐 아니라, <중략>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입니다(7-8절). 가장 중요한 것인 그리스도를 얻는 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큰 걸림돌일까요? 그것은 인간 중심적 생각과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취급해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본받을 참으로 멋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까?
3. 어제는 해발 1600미터인 고도 달랏시 바오록에서 이곳 소수 민족 00 족 교회 지도자 17분들을 만났고, 오늘은 본 메톳 지방을 가기 위해 종일 이동할 예정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 빌 3:12-21. (0) | 2019.05.05 |
---|---|
시련은 하나님의 책망입니까? / 히 12:1-14. (0) | 2019.05.05 |
주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 빌 2:1-13. (0) | 2019.05.04 |
다시 벧엘에 세우신 하나님. / 창 35:1-20. (0) | 2019.05.04 |
허벅지 뼈가 어긋나서야 끝난 기도. / 창 32:22-33:17. (0) | 2019.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