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50호.
시편 시 106:30-33.
찬송 16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떽쥐베리는 사랑을 가리켜서 “나의 인내로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릴케는 더불어 사랑을 하다면 사랑을 알고 싶으면 직접 느껴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랑은 이러한 정의를 모두 합한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레오 바스카 글리아가 쓴 사랑에 대한 성찰 중에서 한 구절 옮겨 보았습니다. 누구나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텐데요. 그래도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는 때라 그런가요?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더욱 절실해 지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년 11월 13일 방송>
2. 교회력 마지막 둘째 주일의 복음서 눅 21:5-28을 본문으로 “미래적 종말론의 이해”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종말론은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3가지 종말론이 언급되고 있어서 혼란을 겪는 게 사실입니다. <임박한 종말론>, <실현된 종말론>, 그리고 <미래적 종말론>이 그것들인데, 모두가 올바른 종말론임에도 그 참된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 모든 책임에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대표적인 미래적 종말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5-13절).
마태복음서와 마가복음서의 종말론이 임박한 종말을 말씀한다고 하면, 누가복음서는 미래적 종말을 말씀합니다. 미래적 종말관의 특징은 종말에 선행(先行)하는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들이 가장 먼저 파괴되고 불에 타서 무너질 것이라는 점입니다(5-6절).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거짓 예수가 출현하고 난리와 소란스러운 소문들이 들릴 것이라고 합니다(7-9절). 그리고 민족과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10절), 지진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이 일어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옥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1-13절). 지금 우리는 미래적 종말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과 같은 불길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때문입니다.
미래적 종말은 믿음의 시련과 엄청난 재난이 예고되었습니다(14-24절).
세상 질서가 새로운 하늘의 질서로 바뀌게 되는 과정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등의 대처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고로 공자와 장자는 초자연 혹은 초월적인 종교문제에 관심이 적었는데,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 질문하자,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는 대답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까닭은 공자는 인간의 인격완성과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실현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인데, 곧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을 전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두고 저는 이해는 인간의 사고영역 안에서, 믿음은 신의 사고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이성에서 신앙으로의 대전환은 천지개벽에 해당하는 진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미래적 종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재림함으로 막이 내릴 것입니다(25-28절).
자연계에 혼란이 일어나고 인간 세계가 기절초풍할 대변혁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혼란과 대변혁의 새 차원의 세계에 새 질서를 확립하실 분의 출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우리를 향해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라 말씀하십니다. 구원받을 새 세계가 시작되는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미래적 종말이야기는 여기에서 막이 내립니다. 더 이상은 무슨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찬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상의 책인 다니엘서나 요한 계시록은 억지로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해석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하고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저의 고교 동기동창이 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계시록의 궁금증 때문으로 제임스 칼라스의 <요한 계시록>을 소개하면서, 말세론적 해석, 초역사적 해석, 과거적 해석은 무방하나, 이단들이 즐겨 쓰는 역사적 해석은 피하라 권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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