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84(2024. 11. 16. 토요일).

시편 92:1-3.

찬송 2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3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국의 배우 조지 알리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겸손은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변화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 주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지혜이다.” 겸손이란 자신감이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며, 혼자서는 완벽하게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뜻이라 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이웃에게 부탁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시온에서 부르는 기쁜 노래(14-20)”을 읽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 의 언덕을 가리키는데, 바위 산성 등을 뜻하는 말로, 그곳에 다윗 성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과 시온 산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의 별명처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바벨론 포로 70년 이전에 활동했던 예언자로, 하나님의 현세적 심판은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착한 일을 하고, 제구실을 잘 할 때는 사랑하시고, 그렇지 못할 때는 채찍을 내리신다고 말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삶에서는 틀리지 않은 말이라 하겠으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신앙인이 뒤늦게 철이 들어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와 같은 철부지를 사랑하십니까? 백번 천 번 죽어 마땅했는데 말입니다.” 그때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네 아버지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소행들, 기특한 짓도 하기도 하고, 못된 짓을 더 많이 하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까닭이 우리 인간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고 넘치는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큰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살핀다면 몇 가지가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첫째는 야훼 하나님께서 원수를 쫓아내셨으니 마음껏 기뻐하라고 하십니다(14). 둘째는 야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 하십니다(15). 셋째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야훼 하나님께서 네 안에 계시니 기운을 차리라 하십니다. 어떻습니까? 어리석게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듯 하나님께 무엇을 해서 잘 보이려고 힘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사랑의 행동 때문에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고, 기운을 차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써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비가 올 때는 비가 오는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입김이 보이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따뜻한 미소를 보일 것입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눈길은 한 번도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수/再修가 아니라 7/七修를 한 다음에 비로소 그 사랑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언제나 똑같은 사랑의 무게로 제 어깨를 감싸 안아 주셨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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