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95(2024. 11. 27. 수요일).

시편 94:11-13.

찬송 5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라는 말 보다는 원망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존 밀러의 이 말을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호랑이를 만들었는지 신께 불평하지 말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그는 매일 세 가지 이상 감사의 말을 사용할 것을 권했는데, 그건 행복한 삶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말입니다.

 

2. “신령한 복, 하늘에 속한(3-14)”을 읽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간에 묵상할 세 번째 주제는 신령한 복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진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삶의 한 복판에 절망이 머물고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힘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스칼과 같은 선상에 서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늘자 국민일보는 주식·코인 광풍에 휩쓸려투자·신앙 사이서 길을 잃다는 헤드라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크리스천들 역시 주식과 코인 투자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크리스천 역시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으로, 또한 영원한 세상을 위해서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주식이든 비트 코인이든 투자를 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이 없는 세상살이의 한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흔히들 크리스천을 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한 발은 땅을 딛고 다른 한 발은 하늘을 향해 치들이고 말입니다. 문제는 균형 잡힌 삶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이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죄와 죽음에서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제1 삶의 원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 된 삶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일입니다(7-10). 둘째는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11-12). 셋째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삶입니다(13-14). 이런 원리를 지키면서 다른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말입니다.

    우리들 크리스천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인데, 이를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단서를 붙였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어디에서 살아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삶이고,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전과 교회에 대한 오해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거하시는 성전을 지켜주실 것을 굳게 믿고, 성전에 모여 들었다가 주후 70년에 있었던 유대전쟁(유대-로마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 한스 큉에 의해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성전 혹은 교회는 기구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이른바 교회, 에클레시아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불려 나온(ek) 사람들이(kalew) 바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일종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선민사상을 오해하듯 말입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은 그와 그의 자손들을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주시려는 심오한 뜻이 바로 선민사상의 본래적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귀한 선민사상을 자기들 민족만을 위한 특권의식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돕기는커녕 더욱 어지럽히고 만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룬 크리스천들도 이런 특권의식을 버리고 제대로 된 바른 하나님 자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다 채우는 데서 얻는 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평화의 천국사상을 이 땅에서 실천해 나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정신으로 가지고 누리는 데서 오는 축복이 아니라, 나누고 섬기는데서 누리는 기쁨과 감사 평화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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