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94호(2024. 11. 26. 화요일).
시편 94:8-10.
찬송 4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인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교육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매일 저녁 식탁에서, 오늘 배운 것을 말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온 가족이 자신이 배운 것을 가족들과 나누며 진정한 배움을 가졌다며, 그는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꼽았는데, 그의 강연을 묶은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통해서 수많은 미국인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2. “하나님의 일꾼(10-23절)”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일꾼의식은 실제적인 면에서는 매우 협소한 의미라는 것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는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개선하려고 나선 이들이 이른바, 퀘이커 교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교회의 일꾼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직명을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 혹은 하나님 안에서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퀘이커 교도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분이 일본의 내촌감상이며, 우리나라에도 그 분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소위 <무교회주의> 라는 공동체를 운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함석헌 유달영 원경선 빅성준과 같은 분들입니다. 한국에서는 <종교 친우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으나, 현재는 초기의 지도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게 되자 유명무실해 진 상태이나, 아직도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약 13만 명의 퀘이커 교도가 활동하고 있다 합니다. 퀘이커 교도는 1647년 영국의 조지 폭스가 자신의 몸이 진동(Quake)하는 영적 체험을 한 후에 창시했습니다. 이렇듯 부작용이 없는 제도나 문제없는 삶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문제를 고치려다가 전체적인 목적까지 손상을 입게 된다면 그보다 더 낭패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든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와 배려가 필요하겠습니다.
고린도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는 집지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를 놓는 사람과 집을 짓는 사람이 다르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있고, 땅을 파고 기초 석을 놓고 콘크리트를 붓는 사람이 있으며, 도면에 따라 방과 부엌과 화장실과 거실을 차례로 구분지어 제작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분업화된 요즘 세상에서는 각자 자신이 전공한 일을 맡아서 일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의 영역에 함부로 참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집, 세상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 그 기초 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석 위에 사람마다 자신의 재물과 능력을 기꺼이 바치는 집을 지어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를 우리들 인생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집을 지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심판은 가장 객관적인 정답표를 가져다 대는데, 무서운 불길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힘써 일군 인생의 집을 그 불로 태울 것인데, 그 불길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 타버리면 실패한 인생이고, 그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불길이란 우리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역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잘 이겨내고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흥미로운 정답표 중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는데, 그런데 세속적인 지혜보다는 차라리 바보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말입니다. 까닭은 세상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엔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목표들이란 하나같이 허망한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여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사랑의 찬가>를 부른 세계적인 샹숑가수 셀린디온은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가지고서도 희귀병 '강직인간증후군'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겨내야 할 시련과 역경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비슷한 희귀병을 이겨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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