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41호(2025. 4. 22. 화요일).
시편 118:4-6.
찬송 30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격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 하루였다. 지성은 인격의 한 요소일 뿐 다른 두 가지 즉 따뜻한 감성과 바른 판단력인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서운 칼이 되어 상대를 후벼 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격은 훈련의 산물이며, 근면 덕행 선행이라는 자질을 키워야 한다. 기독교인 가운데는 싸움닭처럼 살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게 슬픈 일이다.
2. “개종한 첫 사람들(36-41절)”과 “신도들의 공동생활(42-47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하루에 결신자가 3천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은 제 눈을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언젠가 아는 목사님이 진중/陣中 세례에 참가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수백 명은 넘었을 진중세례에 대해서 제가 비판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주일이면 주로 사역을 하는데, 부대 막사를 고치거나 길을 정비하는 등의 일로, 쉬지 못하게 하는데서 오는 불만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거짓 신자를 자처하고 교회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군대에서는 명령과 복종이라는 엄한 규율로 인해서, 진중 세례는 많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정해진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이미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병사들에게도 다시 재세례를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3천명의 세례자를 모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이 회심사건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서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주종관계에 억눌려 있고 빈부귀천이 고착/固着되었으며,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과 이방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사회에 초대교회가 보여준 사랑의 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도 남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적 위로와 각성 뿐 아니라,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얼어붙은 냉담함을 녹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원의 불길처럼 기독교회의 부흥의 불길은 타오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이른바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가장 理想的인 공동생활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천국이 된 듯한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일하던 신학교의 교장선생께서 저와 차를 나누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가까운 훗날 아파트 한 채를 지으려고 하는데 한 10여 세대가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생활 규약에 동의하는 가정들이 입주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입주비용은 가지고 있는 자금이 많든 적든 그 전부를 내놓게 하고, 모든 가정은 매달 생활비 전액을 내놓게 하고 공동 관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능에 따라서 기여하는데, 식사 준비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청소나 수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분담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저녁 공동식사를 한 다음에는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저보고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미를 얻은 며칠 후에 대답을 했습니다. 기쁘게 동의하고 참여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파트를 짓겠다던 분이 그 뜻을 실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아름다운 일장춘몽이었다 생각하곤 합니다. 그 뒤로 비슷한 공동생활을 시도했던 기록들이나 실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고 문동환 박사님의 <새벽의 집>이나, 고 원경선 선생님의 <풀무원공동체> 등이었는데,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욕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가 절실한 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해하는 욕심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처음 정신과 의미를 계속 교육하고 다짐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배려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이 땅에서는 참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40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던 떼제 공동체는 희망의 불씨로 남아있긴 하지만,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기에는 너무 작은 일렁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013년 서대문구에 새로운 공동체가 11년째 순항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심재/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집, 하나 교회(담임목사 김형원목사)가 바로 그 교회인데, 하의재/하나님의 뜻을 품은 집, 하담재/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집 등 2채를 더 사들여 25가구 150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합니다. 아무쪼록 이 공동체가 초대공동체를 계승하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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