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569호(2024. 11. 1. 금요일).
시편 89:42-45.
찬송 5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빌리 선데이는 1880년대에 미국의 내셔널 리그 (야구)의 외야수였으며 20세기의 초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전도자였다. 그가 남긴 명언으로 “많은 사람이 재능의 부족보다 경험의 부족으로 실패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재능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라, 사실은 경험의 부족이 치명적인 문제가 되곤 한다. 경험을 잘 살리는 것이 훌륭한 재산이 된다.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변론하시다(1-8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는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별 볼일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때문입니다. 그들은 밤에 꾸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탁/神託을 백성들에게 전하곤 합니다.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사랑에 넘치는 음성으로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인류 역사에 항상 존재해 왔던 무당이나 박수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선교의 부름을 받고 몽골 울란바토르에 갔을 때,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무당이 제사를 지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벽돌로 울타리를 쳐 두었는데, 어린 아이도 뛰어넘어갈 정도로 아주 낮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미국의 인디언들의 이동식 천막집이 한 채 있었고, 여기저기에 짐승을 불태운 흔적들이 있었고, 짐승의 뼈들이 그 해골과 함께 뒹굴고 있었습니다. 몽골에서는 무당을 영험한 능력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권력다툼으로 살벌한 몽골의 군주 징기스칸(태무진)은 무당 코코추의 도움을 받아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었고, 세계 정벌에 나설 때에도 늘 자신의 곁에 무당을 대동하였다고 합니다. 이후로 무당들의 부정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몽골인들은 무당의 말을 하늘의 말처럼 따랐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거세다 합니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무당은 하늘과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짜 무당들이 성행하는 이유입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무당을 의지하고 싶어 합니다. 구약시대에도 선지자 군/群에는 참된 이들과 거짓된 이들이 혼재/混在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지, 마귀의 말인지를 구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도덕성과 생활 태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예로 들게 하는 사람들이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경우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우스는 도덕적이었으나 그에 비해서 아타나시우스는 불량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때부터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까지 55년 동안 긴 논쟁을 하였는데, 진리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에 택한 것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변론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하시는 변론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괴롭게 한다는 원성에 대한 변론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탓하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해야 성난 가슴이 가라앉고 풀린다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버스 안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혼잣말을 하는 아낙을 쳐다보곤 합니다. 행색을 보아선 고달프게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 원망의 대상이 남편일 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혼잣말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소리일 것입니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저는 너무 힘들어요.” 마치 하나님이 일부러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변명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을 애급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을 항상 앞세웠다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공의롭지 못하다는 불평에 대해 변호하십니다. 모압왕 발락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일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발람을 고용했는데, 발람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직전에 마지막으로 진을 쳤던 싯딤에서 저주 대신에 축복하였던(민 33:49)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미가는 백성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제물에 대해서 충고합니다. 그것은 1년 된 송아지나,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기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가난뱅이이거나, 병든 환자이거나, 힘이 다한 맹수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힘쓸 일이었습니다.
3. 오늘은 만성절/All saints day 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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