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입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 봉사하는 단체를 돕기 위해서 수고하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겉으로 봐선 몇몇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는 것 같아도,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감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장로님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사춘기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듯 말입니다.

왜 태어났을까? 왜 땀을 흘리며 살아야 할까?

왜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 걸까?

저는 사춘기를 10대 초반에 겪은 것 같습니다. 

집이 가난해선지 일찍 철이 들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형님이 인삼뿌리로 나를 유학까지 보내준다고 감언이설을 할 때도,

그게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월사금(학비)를 제 때 내지 못했지만, 향학열은 높았고, 

고등학교를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 대학은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라든지, 삶의 가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장로님. 

저는 지난 칠십여 생을 지나면서 여러 종류의 군상들을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기를 쓰고 돈을 벌려거나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계산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몇 년을 앞에 두고 사람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잘 터득한 것입니다.

확실히 성공과 출세에 큰 도움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감투도 여러 개나 쓰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뭔가 의미있는 삶, 가치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수입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몫을 떼어 정기적으로 후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자와는 달리 자신의 미래나 출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훗날 그 중 한 분이 엉뚱한 일에 휘말려서 고초를 겪게 되었을 때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부인이 제게 항의를 해 왔습니다. 

헛된 일에 돈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었다고 말입니다. 

그때 제가 그 부인을 설득하느라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그렇다고 말입니다.


엊그제 저의 고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그 분 역시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오랫동안 재정을 맡았던 신실한 친구입니다. 

그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분에 넘치게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일반적인 목사들과는 다르게 성경을 해석한다든지, 역사를 보는 눈을 뜨게한다든지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의미라든지 가치라는 말에 생각을 깊게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고 배부르게 

그리고 남에게 욕먹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면 됐다 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적당히 장단도 맞추고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촛불을 든다든지,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걸 질색으로 여깁니다. 

언제나 조용한 변화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편하고 안정된 삶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었지만,

의미나 가치를 물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순기능을 하였고 바람직하게 발전했습니다.

대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주 작은 몇 사람에 의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열 두 제자, 그리고 그 밖의 아주 작은 사람들이 역사의 변혁자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분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대한 물결에 묻혀서 떠다닐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나름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배만 부르고 편한 잠자리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말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작하신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이냐는 물음에 답한 이야기입니다. 

대답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다가서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내 이웃이라고 말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사시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장로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도 깃든다고 하니까 환절기에 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평화 !


박성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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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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