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화를 하셨을 때 첫 질문이 "어떻게 지내세요?" 였습니다.

충분히 예상된 질문이었는데도 저는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내고 있어요." 이게 저의 대답이었으니까요.

 

그냥 지낸다. 참 무미건조한 말이지요.

딱히 적당한 말이 없을 때는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습니다.

"어머니 잘 계시지요?" 라고 할 때도,

"설교 준비는 끝내셨어요?" 라고 할 때도, "그냥 지내세요."

"아이들은 공부 잘 하지요?" 라고 할 때도, "그냥 그렇지요. 뭐." 라고 대답했으니까요.

 

제가 은퇴를 하고 이런저런 안부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했던 것이 성의없다 싶어서 제 발등이 저렸던 모양입니다.

굳이 이런 변명까지 늘어놀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냥이라는 대답을 대신할 사연있는 얘기를 했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그게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L 장로님 !

요즘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세끼를 충실하게 먹고 있습니다.

아침은 만 20년째 선식으로, 점심은 아주 간단한 외식을, 저녁은 아내가 차린 밥상으로.

어느 왕보다 더 호사합니다.

점심을 외식을 한다니, 왤까? 궁금하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와 있는 날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을 합니다.

누군가 만나야 할 일이 없으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도봉산 둘레길 산책에 나서는 일인데, 그 땐 거의 매번 하산 길에 순두부백반을 사서 먹습니다.

그리도 나머지 한 가지는 실버 극장에서 명화 감상을 하는 일인데,

극장 주변에는 음식 잘하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청국장이나 국밥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런 음식들은 값도 저렴하지만 건강식이라 생각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후 1시 반쯤에 귀가하면 책상 앞에 앉습니다.

자세를 고추 세우고 방송 녹취를 합니다.

제가 묵상자료에 퍼다 나르는 주옥같은(?) 얘기들이 여기서 나옵니다.

실제로 제가 사용하는 양보다 녹취하는 양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약 2시간을 방송 녹취에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묵상자료를 위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을 글로 옮깁니다.

그런 다음에 JTBC 정치부회의를 1시간 정도 시청합니다.

 

오후 6:30에서 7시 경에 저녁을 먹고 아내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8시가 지나면 잠자리에 듭니다.

꿀잠을 잔 후 새벽 4시가 되면, 잠에서 일어나 다시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거나 책을 읽습니다.

 

L 장로님 !

제가 젊은 날에 감명을 받았던 책이 있는데, <시간을 두 배로 쓰는 사나이>라는 책입니다.

러시아의 물리학자로 기억되는 저자는 전쟁터에서까지 책을 읽었고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엄중한 시간에도 자신이 해야만 할 일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참 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진 몰라도,

그 분 자신은 참 행복하게 일생을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시간을 오롯히 자신의 의지와 마음대로 사용했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아산으로 내려가면 저의 시간표는 많이 달라집니다.

적어도 낮 시간은 텃밭에서 보내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생명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집 주변이며 도로를 청소하는 것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아내는 거의 꽃밭에 숨바꼭질하듯 자라는 잡초뽑기에 하루를 다 보냅니다.

 

저는 천국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 여기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마다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입니다.

다른 게 있다면 이웃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생활 속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을 갖는 시간은

바로 잠자리에 들어가는 그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저의 마감 기도입니다.

 

그동안 짧은 인사, "그냥"을 길게 설명하고 나니까,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장로님께서도 매일매일이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평화 !

 

성주간 금요일에 박성완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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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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