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175호 (2007. 5. 1. 화요일).
시편 시 85:7-13.
찬송 5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연애기간 동안 아내는 자주 강조했습니다. 자신과 결혼할 사람은 이것만은 절대 해선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하게 할 수 없다, 하는 게 딱 한 가지 있다고요. 실제로 두 사람이 결혼한 후에, 남편은 아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딱 한 가지, 그것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운전이었는데요. 사실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고 여러모로 필요해서, 승용차가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아내가 제시했던 그 단 한 가지 금지 조항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어린 시절에 차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없는 가정의 힘겨움과, 세 명의 동생을 둔 장녀로서의 힘겨움을, 언제나 뼈저림을 겪어야 했지요. 그러다 보니 차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이 커졌습니다. 그 두려움과 원망이, 마침내 결혼하면 남편에게 운전만은 절대 못하게 하겠다는 완강하고 확고한 결심이 된 것이지요.
어떤 불행을 겪고 나면, 그 불행을 가져다 준 대상이 너무도 두려워지지요. 오직 그 대상만 피하면 괜찮을 것 같은 강박관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통의 기준에 어긋난 것을 고집하거나 억지를 부리게도 됩니다. 그래서 불행이란 불행 자체 못지않게, 그 후에 남겨진 상처나 흔적들이 더 큰 고통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상처나 흔적도, 역시 시간의 힘, 세월의 힘에는 못 당하는 듯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는 이 운전에 대한 공포를 차츰 극복해 갔습니다. 덕분에 얼마 전, 남편은 결혼 11년 만에 운전면허도 따고 차도 마련했습니다. 차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것 보다, 아내의 편안해 진 마음이 더 기쁘다는 남편은, 운전이 꽤 익숙해지면 아내를 곁에 태우고, 제일 먼저 전과는 또 다른 애틋함으로, 장인의 산소를 찾아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7년 4월 26일 방송>
2.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하려면 기도를 먼저 하라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 까닭이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소명을 앞두고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12절). 하나님의 일에 사람들을 쓰시려고 제자를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심사숙고하고 기도까지 드린 결론은,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낮은 수준의 제자 채용이었습니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은 어부들이었고, 빌립과 바돌로메(종종 나다나엘로 불림)는 벳새다 출신으로 농부였거나 아니면 어부였을 것 같고, 마태(혹은 레위)는 세리출신이었고, 그 밖에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그리고 가룟 유다인데 모두 갈릴리 지방 출신들이었습니다. 일부러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야 하나같이 촌티가 줄줄 나고 무식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짜여진 셈입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라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마치 덕유산 산자락 아래 시골중의 시골출신인 제가 목사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은 이런 별 볼일 없는 존재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에도 준마(駿馬)가 아니라, 나귀를 타셨던 것처럼 말이지요(마21:1-9).
그 다음 내용은 마태복음서가 산상에서 가르치신 교훈이라고 해서 산상 수훈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교해서 평지 수훈이라고 부르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평지 수훈은 산상 수훈과 조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우선 산상 수훈에서 첫 대목이 되는 팔복(八福)의 말씀이 평지 수훈에서는 삼복(三福)의 말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지 수훈에서는 가난한 자, 주린 자, 인자를 인하여 미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성격도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됩니다. 평지 수훈에서는 “가난한 자, 주린 자”라고 특정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이며, “의에 주린 자”가 아니라, “주린 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상 수훈에서의 내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외적이고 육적인 의미가 물씬 풍긴다는 말입니다. 평지 수훈은 산상 수훈과는 달리 왜 이렇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누가복음서의 저자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배경에서 연유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와는 구별되게 인도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부와 권세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말입니다. 똑같은 설교를 자신만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 옛날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신학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이해하고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필연적인 일이겠지요.
3. 묵상자료는 여러분의 매일의 묵상을 돕기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매일 묵상하시기를 권장합니다. 그런데 1주일 이상씩이나 묵상자료를 클릭하지 않으면,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관리 중에 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을(100명) 위해서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 집의 기초 석은 무엇인가? / 눅 6:39-49. (0) | 2019.03.05 |
---|---|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 눅 6:27-38. (0) | 2019.03.05 |
목적이 먼저냐 수단이 먼저냐? / 눅 6:1-11. (0) | 2019.03.05 |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일이 구원의 삶. / 히 2:1-10. (0) | 2019.03.05 |
의사의 필요조건. / 눅 5:27-39. (0) | 201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