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77호(2013. 11. 27. 수요일).
시편 시 138:6-8.
찬송 3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홀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1895년 12월 28일 루이 류미에르(Louis Lumiere)가 영화를 탄생시킨 이후의 초창기 영화들은, 한 장면에 한 컷이었습니다. 카메라를 한 곳에 고정시키고 한 장면을 찍었으니, 영상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가 지금처럼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 경험하기 힘든 특유의 표현력을 갖게 된 데에는, 이 사람의 역할이 컸습니다. 1910년대 미국에서 활동했던 데이비드 그리티스 감독입니다. 그는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표정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거나, 두 가지 이상 일어난 일을 한 장면 안에 교차 편집하는 기법 등을 도입하면서, 한 장면에 한 컷이라는 원칙을 깨트렸습니다. 이런 시도는 그리피스를 영화의 아버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영화에서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로 격상시켰는데요. 그리피스가 남긴 말 또한 인생이 라는 영화를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하고, 각각의 장면에 두 가지 컷을 교차 편집해 넣은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하는 인생이란, 홀로 서야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랑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인간으로써의 삶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무엇의 힘이 무엇의 용기가 필요한지도 짚어주었습니다. 홀로 서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힘,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이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도, 용기를 기르는 일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기댈 사람이 없고, 사랑은 부족하고, 삶이 껍데기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위험과 실패 앞에서 한없이 부족해지고 마는 용기. 그러나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했지요. 용기도 자란다고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1월 15일 방송>
2. 가끔 왜 나를 부르셨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원망스런 마음에서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에서 그렇게 자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면,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화들짝 하고 놀랄 지경입니다. 이런 생각은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혹시 어떤 분은 내가 사업가가 아니라 목사가 되었다면, 큰 일 날 뻔 했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테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가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많이 후회를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세월이 그렇게 생각과 행동을 굳어지게 한 때문이라고도 말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의 섭리 혹은 운명적인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는 “산 돌”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좀 생뚱맞은 용어입니다. 산에 있는 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Living stone이라고 씁니다. 예수님이 산돌이시고, 우리도 산 돌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이사야 28:16을 인용해서 시온에 있는 요긴한 모퉁이 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돌은 집을 짓는 머릿돌이 된다는 말입니다. 집을 짓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심에 받침이 되어 주는 돌을 머릿돌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 인생의 집의 머릿돌이 되시듯,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머릿돌을 설명하는데,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의 의문은 왜 살아 있는 돌이냐는 것입니다. 한번 머릿돌이 되고나면 그걸로 끝이 나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돌, 생명력을 행사하는 돌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계속 궁금해 했으면 좋겠습니다.
3. 이 묵상은 성경 책 한 권만 가지고, 여우야이 숙소에서 묵상한 것입니다. 인터넷이 여의치 않는 시골을 가야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미리 준비했는데, 이번은 거꾸로가 된 경우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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