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85호.
시편 시 111:5-8.
찬송 4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자작나무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한 때 조국과 고향, 연인을 상징하는 자작나무의 껍질에 이름을 적어서, 명함으로 쓰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지요. 추위를 견디고 따뜻한 계절을 맞은 성질을 닮아서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그네들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자작나무로 된 물건을 선물하기도 했지요. 또 흰 눈과 함께 겨울의 낭만을 더했던 자작나무의 흰 껍질은 기름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예부터 유용한 땔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래 타면서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환히 비추는 자작나무처럼 누군가에게 조금 더 따뜻한 존재로 남고 싶다는 바람 드네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2월 18일 방송>
2. 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로 이사야 7:10-17을 본문으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개인이나 민족이건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그들 역사를 단면으로 펼쳐본다면, 분명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사회로 갈수록 이 점은 더욱 명확해 지는데,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10-12절).
남왕국 유대의 열두 번째 왕 아하스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대하 28:19). 자신이 믿었던 인격적 하나님을 우상숭배자들의 하나님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말씀과 약속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눈과 손으로 확인되는 우상숭배가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21세에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져주시고 보여주시는” 형상화한 하나님이 활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수 없던 중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첫 의도와는 달리 성화(聖畫)나 성상(Icon)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도록 하였습니다. 1522년 9월 번역 출판된 독일어 성경은, 독일인들에게 하나님을 말씀 안에서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1522년 3월 루터의 비텐베르크 설교는 “나는 말씀을 설교하고, 나는 말씀을 말하고, 나는 말씀을 적으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빌어 오실 것입니다(13-16절).
서쪽 지중해를 제외하고 북쪽에는 앗수르가 동쪽에는 바벨론이 그리고 남쪽에는 애급이 호시탐탐한 위협하는 남왕국 유다는 하늘의 징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징조를 찾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우상숭배자들은 호시절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시절이 메시아의 임재를 가르치기에 적합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오실 메시아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은 우리에게 엄청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앞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형상화하는 것을 막으시려고 친히 사람들 한복판에 실체를 가진 분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상이 아니라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17절).
우상에 대한 오해는 여전합니다. 우상을 하나님과 동급(同級)으로 생각하는 일 말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종이 신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우상이 다를 수 있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찌하여 이처럼 우상이 다양하고 많을까요? 사람들은 제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이 필요한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상에 재미를 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래 전부터 이미 구약 성경에도 그리고 현대 기독교 안에서도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도 만능 주의자들로부터 성경의 한 두 구절만을 붙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기독교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책들이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같은 우상이 된 하나님에 길든 현상에서 나온 비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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