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52호.
시편 시 72:11-14.
찬송 36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파란만장한 이력을 가졌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몇 주가 지나서 동독 교회에 목사가 필요하다는 청을 받고 동독으로 넘어가 동독교회를 섬긴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가정에서 자랐다. 1990년 동서독 장벽이 무너져 통일이 되자, 그녀는 1991년 헐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을 거쳐, 연방 하원의원에 8차례 당선되었고, 2005-2021년까지 4차례 독일 총리를 역임하였다. 그가 남긴 명언은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야 한다.” 이다. 빨리 가고 싶어서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휘청거린다.
박성완, 24. 7. 6.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로, 사도서간 고후 12:1-10을 본문으로 “환상과 계시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신비체험은 모든 기독교인의 로망일 수 있습니다. 신비한 음성을 듣고 놀라운 기적 한 복판에 서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고 확고한 신앙의 반석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한 경험자의 말을 들어봅시다.
초대 기독교회는 신비체험자들로 넘쳐나 혼란스러웠습니다(1-4절).
50-60년대는 용문산에서, 70-80년대는 한얼산을 중심으로 신비체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방언을 받았다는 평신도들의 기도 소리가 교회당을 흔들었습니다. 정숙한 예배를 강조하던 장로교회에서는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허용했지만 교회당에서는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방언기도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박수를 치며 복음가를 부르는 모습이 빈번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를 막으려 했지만 터진 봇물과 같았습니다. 한얼산 골짜기는 기도소리로 캄캄한 밤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제3자처럼 담담히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신비체험은 모든 사람을 능가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몸과 함께 갔는지 영만이 갔는지는 모르겠다 했습니다. 낙원과 같은 곳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말을 들었습니다.
신비체험은 교만병에 들게 하였고, 이를 막기 위해서 가시를 주셨습니다(5-8절).
신앙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만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에 교만해졌습니다. 그것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거나, 성공했어라 거나,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고 남들 앞에서 자랑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때를 위기로 생각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때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교만병에 들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인류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영웅호걸들이 자신이 최고의 지혜와 능력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할 때 몰락의 길로 떨어진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였던 선배 한 분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학자라고 추켜세우자, 천국에 갔다 왔다는 책을 낸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병으로 세 가시로 고통당한다. 고백하였는데, 안질과 치질 그리고 간질이었다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교만병의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살면서 그 멍에를 자랑해야 했습니다(9-10절).
교만병의 폐해는 심각하여서, 사도 바울은 이를 가시에 비유하였습니다. 한번 박히면 살을 뚫고 깊이깊이 빠져들어 가는 가시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간청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너는 이미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이 자신에게 머물러 계시도록, 더욱 더 자신의 약점들(가시들)을 열심히 자랑했고,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모욕과 빈곤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아야 했다 고백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을 받았다면, 더 건강하고 부유하고 온갖 축복이 넘쳐야 하는데, 오히려 모욕과 박해를 당했다면 말입니다. 교만병을 극복하는 방법은 교만병이 가져다주는 가시들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질과 치질 그리고 간질을 반길 사람은 없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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