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아침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삶을 비관한 사람과 현대 문명의 허점이 잘 조합된 엄청난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아름다운 이웃들입니다. 그리고 강한 이웃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도전을 극복할 때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찾았던 중풍병자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기에 그분 앞에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은혜 받겠다는데 누가 양보 하겠습니까? 다른 것과는 달리 은혜는 뒤로 미룰 성격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자신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다 줄 장정들에게 지붕을 뜯게 하였고, 들것의 네 귀퉁이에 줄을 매달아 예수님 앞으로 내리게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 앞에서 멈춰서서는 안됩니다. 문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지혜를 구했고, 그 지혜를 따라서 행동하였습니다. 도전을 극복하는 불굴의 정신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자랑스럽고 아름답게 바라봅니다. 어쩌면 문제 앞에서 불평이나 하고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만난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도전하는 사람들, 그들은 반드시 아름다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노아가 이런 도전정신을 실천하였고,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모두 멋진 삶을 만들어 갔습니다.
합심할 때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만 모여도 의견이 달라서 요란합니다. 겨우 둘 뿐인 부부관계도 삐거덕거리는 것이 인생살이인데, 네 사람이 합심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네 사람은 들 것을 운반할 때부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였습니다. 보조를 같이 하기 위해서 서로 맞춰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걸음의 폭이나 숨쉬기도 맞춰야 했고, 들 것을 잡는 힘도 적절해야 했습니다. 거기다 이번에는 지붕을 뜯는 문제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분명히 이런저런 의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붕까지 뜯어야 하느냐는 반대의견도 있었을 것이고, 그 높은 지붕에서 줄에 달아내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염려도 제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한 마음 한 뜻이 되기로 했습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힘을 모을 것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역할분담을 실천하였습니다. 기왓장을 끌어내리는 일에서부터 긴 줄을 구해오는 일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붕에서 예수님 앞으로 정확하게 달아내리게 되었습니다. 합심 협력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런 합심 협력하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두 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을 보면서 거기에 제 정신을 가진 한 두 사람이 없었다는 회환을 갖게 합니다. 삶을 비관한 사람이 있었고, 전동차의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무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직업의식도 없었고, 생명의 위험을 바라보는 윤리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들 중에 한 두 사람만이라도 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거대한 지구에, 제대로 된 한 두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 줍니다. 모든 사람이 다 깨어있을 수 없습니다. 차에도 누군가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도 누군가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국가나 교회에도 누군가는 깨어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그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이런 두 세 사람만이 있다면, 그런대로 세상은 돌아갈 수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이 세상에는 '갤러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직함은 요란하지만 구경꾼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이런 두 세 사람에 우리들 이름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인생과 추한 인생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잘 어울려서 값진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왔던 그 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
2003년 2월 23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3.3.09 주일] 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 로마서 8:31-39 (0) | 2013.12.21 |
---|---|
[2003. 3.02 주일] 무엇을 구할까? / 열왕기하 2:1-12a (0) | 2013.12.21 |
[2003.2.16 주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고린도전서 9:24-27 (0) | 2013.12.21 |
[2003.2.09 주일] 절망의 순간에는 / 욥기 7:1-7 (0) | 2013.12.21 |
[2003.2.02 주일] 귀신을 내쫓자! / 마가복음 1:21-28 (0) | 2013.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