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99호(2020. 10. 23. 금요일).
시편 시 108:8-10.
찬송 13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 준비에 바쁜 동생 은하에게> 며칠 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너 많이 투덜댔었지. 바쁜 예비 신랑을 괜히 불러내서 술을 먹인다고. 그런데 말이야, 오빠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야.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해 보니까, 네 신랑도 보통의 남자라는 것을 알겠더라. 남자들은 다 그래. 여자들은 다 그래. 이렇게 일반화시키고 편 갈라서 이야기하는 것, 간혹 틀린 경우도 있지. 터프한 여자도 있고, 여자보다 더 섬세한 남자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결혼해서 살면서 네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곧 바로 직접 말을 해서 얻어내길 바래. 눈치껏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이런 생각은, 이 편지 읽는 순간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나나 네 신랑감이나, 일반적인 보통의 남자들은 대부분 눈치 치라고 보면 돼. 눈치로 뭔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여자들에 비해서 기본적으로 떨어지거든. 그러니 네 생일이며 결혼기념일, 달력에 붉은 색 동그라미를 치고, 당당하게 미리 밝혀두는 게 좋아. 또 네가 저녁 준비하는 동안, 거실 좀 치워 달라, 쓰레기 좀 내다 놔 놓아 달라, 아예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좋을 거야. 알아서 해 주겠지. 이러고 있다가 결혼하더니 변했네, 어쩌네, 이러지 말라는 거지. 그냥 네가 결혼한다니 오빠의 몇 년 전 신혼시절이 주르르 떠올라서 하는 이야기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이 하루 24시간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옛날 옛적 이야기 아닐까? 부부라도 함께 있을 시간이 적은 요즘은 좀 위험하지. 그러니 인생의 두 번 오지 않아야 더 좋을 신혼 시절, 싸우느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현명해져야겠지. 네 결혼 준비에 생색나게 도와줄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잔소리 부조나 했어. 예쁘게 잘 살아야 해. 예쁜 내 동생.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0월 27일 방송> a.
2.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18:39-19:16)”을 읽었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은 4복음서가 모두 취급하고 있는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서에 비해서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서는 빌라도의 예수께 대한 우호적인 심정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마는 일찌기 공화정을 채택하고 토론 중심의 법치주의 정치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을 빌라도가 잘 보여주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빌라도는 법치라는 차원에서 예수에게서 범죄사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인 정치적인 반동을 계획하거나, 소요를 선동하는 전과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관대한 생각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 앞에서(18:38), 두 번째 또 유대인들 앞에서(19:4), 대제사장과 경비병들 앞에서(19:6), 세 번씩이나 예수에게서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를 놓아줄 기회를 찾으려고 선례를 따르기까지 했습니다(19:12). 그러니까 빌라도는 로마법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하려고 했고, 할 수만 있다면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었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전혀 상반된 입장을 취했던 빌라도에 대한 평가를 과정보다는 결과로 대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과정을 시시콜콜 얘기하기 보다는 간단하게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 예나 제나 우리들 인간의 편의적 평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자신이 통치하는 유대인들의 민심을 사는 쪽으로 재판을 종결짓게 됩니다. 그것은 빌라도에게만 책임을 물을 성질이 아닙니다. 빌라도를 에워싼 시대정황을 다 함께 묶어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덕분에 빌라도는 “우리의 왕은 가이사 밖에 없나이다.” 라는 대제사장들의 로마 통치에 야합할 빌미가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일거양득의(一擧兩得)의 성과를 얻은 것입니다. 그 결과 빌라도는 작은 이득에 눈 먼 정신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역사의 대표적인 죄인이 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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