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32호.
시편 시 139:1-4.
찬송 26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온화한 낯빛으로 내 손을 잡고 힘을 북돋우며, 나를 이끌고 비밀의 세상으로 들어섰노라.” 스승의 존재감을 잘 들어내는 문장으로 꼽히지요. 단테의 [신곡] 중의 한 대목인데요. 내 손을 이끌고 비밀의 세상으로 함께 들어서서, 그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또 느끼게 하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라는 뜻이겠지요. 비밀 세계로 이끌어주는 등불로써의 스승의 존재감. 이런 특별한 날에 한번쯤 되새겨 보게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5월 15일 방송>
2. 부활절 여섯째 주일의 사도서간 벧전 3:13-22을 본문으로 “옳은 일을 위해서 사서라도 고난을 감수하자” 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즘 가장 핫한 책은 자기 계발서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의 중심에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우뚝 서 있습니다.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고난에 맞설 뿐 아니라 고난을 감수하라고 말입니다.
두가지 고난을 소개하는데, 옳은 일을 하다가 겪는 고난과 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입니다(13-17절).
제가 감동을 받은 여러 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켄트 케이스의 <그래도, Anyway>입니다. 수 십 권을 구입해서 교우들과 친구들에게 선물한 이른바 ‘역설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 째 역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헌신하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헌신해도 칭찬을 듣기는커녕 경을 칠 수도 있다. 그래도 헌신하라.”입니다. 우리들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난이 아예 없거나 고난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모습입니까? 다행히 우리는 일찍이 고난을 훈련받았습니다. 가난과 질병, 신앙과 현실의 괴리,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부조리 등입니다. 다행히 고난의 강을 잘 건너도록 훌륭함을 넘어 위대한 부모님들이 삶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다 고난을 겪기로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위대한 모델 그리스도 예수가 계십니다(18-19절).
가끔 유명하다는 교회 지도자들까지도 예수님은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셨다고 허튼 소리를 합니다. 그 말속에는 십자가에 감춰진 하나님의 사랑을 어리석은 일이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명이 그의 <원리강론>에서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돌풍에 휘말려서 죽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죽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구원의 섭리를 곡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 스스로 끌어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죄인 중의 괴수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 악명 높은 십자가를 사랑하고, 삶의 곳곳마다 십자가를 만들어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참된 고난의 삶이란 매일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세례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입니다(20-22절).
예배의 정신을 제대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예배하러가는 사람들은 세례대를 거쳐 지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현대 교회가 잊어버린 것 중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세례를 뒷전으로 몰아낸 일입니다. 어쩌면 세례를 구원의 증표정도로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단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성례입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분명한 진리라는 뜻입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욕심을 나눔으로 바꾸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일은 힘든 말입니다. 그 다음에야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살아나는 감격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5. 28. 성령강림절 주일] 임재하실 때. / 행 2:1-21. (0) | 2023.05.28 |
---|---|
[2023. 5. 21. 부활절 일곱째 주일] 진실한 기도 :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 / 요 17:1-11. (1) | 2023.05.21 |
[2023. 5. 7. 부활절 다섯째 주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 요 14:1-14. (0) | 2023.05.07 |
[2023. 4. 30. 부활절 넷째 주일] 세상이 희망하는 교회의 모습. / 행 2:42-47. (0) | 2023.04.30 |
부활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 / 벧전 1:17-25. (0) | 2023.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