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60호.
시편 시 145:1-3.
찬송 1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언제나 머리를 높이 두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으며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으리니.”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 장애를 겪었던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사회사업에 헌신했던 그녀는 “영혼을 잃지 않는 한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지요. 맑은 영혼과 정신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이길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년 6월 12일 방송>
2.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의 복음서 마 9:9-13을 본문으로 “현상보다는 중심을 주목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소명하시는 일화 중에 세리 마태를 부르신 내용을 말씀입니다. 마태라는 인물의 배경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주님은 고급 관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9-10절).
주님께서 택하신 제자들은 대체로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 살고 있는 어부와 농부들이었습니다. 주님의 활동무대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알패오의 아들로 마태라고도 하고 레위로도 불린 사람이었습니다(막 2:14, 눅 5:27). 고급 관리에 속하는 세무직원이었습니다. 당시의 세무직 공무원은 유대인들에게 미움의 대상이었는데, 까닭은 유대를 식민통치하는 빌라도의 부하라고 생각하였고, 유대인에게서 많은 세금을 강탈해가는 인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그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참석했다 합니다. 세리 마태야 두말할 여지도 없는 죄인이고, 다른 죄인들이란 세리와 비슷한 빌라도의 주구(走狗/앞잡이)로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주님의 뜻을 가늠하게 됩니다. 주님은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도 구원하고 싶어 하셨다는 뜻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현상을 주목할 뿐 중심을 소홀히 합니다(11-12절).
대체로 겉으로 들어나는 것에는 민감합니다.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의 대학 동창 중에는 사회 정황에 대해서 역사의식이 있을 법한 이들인데도 불구하고, 소위 뇌하부동(附和雷同)하기를 잘 한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문자 그대로 천둥소리에 맞춰서 야단법석을 하는 이들입니다. 성경에서는 바리세파 사람들이 그런 대표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장면을 보고 기겁을 하며 큰 소리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 붙인 것입니다. 겉으로 들어난 것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현상에서는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주목하게 될 때 심오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한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은 현상 그 너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13절).
요즘 인기리에 재방송 중인 <전원일기>에는 공부 얘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립니다. 기초가 없는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부모들의 어리석은 얘기입니다. 가정교사를 몇 년 경험한 저로써는 결과 중심의 학습보다는 공부하는 목적과 기쁨을 깨우쳐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깨우쳤으면 했습니다. 그 다음에 공부하는 방법과 결과가 뒤따를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은 신앙생활의 의미와 목적을 지적하십니다.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신앙심에서 우러나와서 행하는 이웃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장과 출세라는 결과에 주목합니다. 우리 교회도 여기서 한 발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작은 신앙생활의 과정일 뿐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6. 25.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들. / 렘 20:7-13. (0) | 2023.06.25 |
---|---|
[2023. 6. 18. 성령강림절후 셋째 주일]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죽으신 주님. / 롬 5:6-15. (0) | 2023.06.18 |
[2023. 6. 4. 성삼위일체 주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목적. / 창 1:1-2:3. (0) | 2023.06.04 |
[2023. 5. 28. 성령강림절 주일] 임재하실 때. / 행 2:1-21. (0) | 2023.05.28 |
[2023. 5. 21. 부활절 일곱째 주일] 진실한 기도 :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 / 요 17:1-11. (1) | 2023.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