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5(2000.10.22, 주일)
성경말씀 : 잠 24:9-12.
찬송 : 278장.

1. 오늘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2. 우리들의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동시에 그렇게 좁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우리의 진짜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비롭지만,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모질고 잔인스러울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딱히 그 까닭이 애매 모호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이런 우리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러우며 또한 정당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권고하시는 이유가 예 있습니다.

3. 긍휼을 베푼다는 말은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주는 일을 의미합니다. 11절을 보면 죽음의 길로 끌려가는 사람이나 살육 당하게 된 사람을 살려주라는 말씀을 합니다. 천하보다도 더 귀한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주는 일이란 어떤 일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영국의 한 시인은 “참새 새끼 한 마리를 제 둥지에 올려놓아 줄 수만 있어도 내 삶은 헛되지 않아요.”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참새 새끼의 생명을 구해 주어도 헛되지 않은 생명이라면, 한 인간의 생명을 구해 주는 일이란 얼마나 큰 일이겠습니까?

4. 이런 위대한 일을 우리로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죽게 될찌도 모를 수많은 비참한 생명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돈 몇 푼 더 빨리 벌어보겠다고 온갖 독성이 있는 약품을 처리한 식용업자들이 순진한 백성들의 생명을 죽이고 있다면, 그들은 이런 악행을 당장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남의 통장을 가로채서 도주하는 사람들, 뇌물을 주고 1급 정보를 빼내어 착복하는 사람들, 등등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이웃을 생명을 죽게 만드는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그런 위험한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한 어린아이를 도와주십시오. 한 달에 몇 만원을 보내 주시면 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고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한 생명을 소망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5. “불쌍히 여기라.” 이것은 지금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이웃에 대한 관심, 특히 연약한 이웃에 대한 동정, 지금 우리들이 힘들면 힘들수록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들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그들 때문에 우리가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중년 부인이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의욕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죽는 것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딱하게 주목하고 있던 친구가 찾아 와서 “오늘 나랑 어디 좀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부모들이 내다 버린 아이들을 일시 보호하는 수용소였습니다. 그 곳에 들어섰을 때, 한 어린아이가 엉금엉금 기어오더니 자신의 치마 자락을 잡으면서 “엄마!”하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훨씬 더 많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생을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6. 서로 불쌍히 여깁시다. 남편을 불쌍히 여깁시다. 아내를 불쌍히 여깁시다. 아이들을 불쌍히 여깁시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주저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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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14(2000.10.21, 토)
성경말씀 : 잠 24:1-8.
찬송 : 278장.

   마음과는 달리 우리 역시 악인을 닮아 가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리일 것입니다. 말이나 마음으로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우리의 삶은 어느새 그 흉내를 열심히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악인의 생각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악인의 생각이란, ‘출세나 성공하면 모든 약점이나 부끄러운 점은 감추어진다.’는 속임수를 말합니다. 정말 악인은 가까이 해선 안될 요주의 인물입니다. 그는 교묘하게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악한 길로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악인을 가까이 하게 되면 필경 악인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 외에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십시다. ‘나는 지금 악인을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대안으로 지혜자를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과는 달리 지혜자는 항상 신중합니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작은 일보다는 항상 큰 일을 생각하고 있는 때문이며, 눈앞을 보기보다는 좀 더 멀리 내다보기 때문입니다. 바둑 용어에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는 큰 것을 잃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악인과 지혜자를 대조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큰 것을 항상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눈앞만 바라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바라보는 눈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이런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내가 쓰지만 그 열매는 반드시 달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주변을 주목해 보십시다. 지혜자들이 여러분의 주변에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침착하게 만들어 주고, 좀 더 크고 멀리 바라보게 하는 눈을 띄워줄 것입니다. 만일 이런 친구가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찾아오십시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이런 좋은 이웃을 허락해 달라고 말입니다. 옛 신앙의 선배들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지혜자로 삼기도 했으며(스펄전), 심지어는 강아지를 지혜자로 삼기도 했습니다(루터). 예수님은 시장 어구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혜자로 소개하셨습니다. 

   내일은 거룩한 주님의 날입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끝내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날에는 주님 만날 준비로 기쁨 가득한 복된 날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총으로 승리하십시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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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17장.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아셈회의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나라들 간에 필요를 채워주는 대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모릅니다. 참가하는 모든 정상들이 피차에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을 증진시키며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은 독주가 될 수 있는 음주 습관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게 된 역사는 꽤 오래일 것입니다. 식사와 함께 술을 마셨고(飯酒), 사교를 위하거나 잔치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적당히만 마신다면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술을 적당히 마시는 절제 능력이 상실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독주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과음하게 될 것이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고(간), 간접적으로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 나라 교통 사고중 음주로 인해서 생긴 것을 비롯해서 온갖 분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음주 습관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는데,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하듯 절제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술의 힘에 끌려 다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한국에 기독교회를 가지고 왔던 첫 번째 선교사들은 다행스럽게도 퓨리탄(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생활에서 금욕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눈에 비친 우리 민족의 모습은 술과 담배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게 보였습니다. 사실 기독교회 진리는 술과 담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만은 꼭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초 문제를 고치지 않는 한, 이 민족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개신 교회는 주초 금지가 교리처럼 생각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람이 인박히면 고치기 힘들어 집니다. 소위 중독 현상인데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절제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그렇습니다. 참된 용기는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별하고,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큰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소위 성공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지혜나 배경 때문에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절제하는 힘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작은 계획 하나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술은 우리 인간의 절제 능력을 약화시키는데 일조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오늘 본문 32-35절의 말씀은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의 결과를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라고 말입니다.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헛된) 것을 발할 것이요.”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며 행동입니까?  절제를 못하게 하는 술에 인 박이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몸을 더러운 돼지 울안에 처박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는 삶이 될 때, 참된 평화와 소망이 넘쳐날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은총이 여러분 위에 내리시길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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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12(2000.10.19, 목)
성경말씀 : 잠 23:22-25.
찬송 : 305장.

1. 어제 묵상자료를 늦게 보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가족의 의미를 묵상하라 십니다. 가족관계를 흔히 ‘천륜(天倫)’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는 뜻이지요. 운명적인 관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부모님과 형제 자매 그리고 자식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관계를 우리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엄숙한 마음으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적극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가족관계가 있는데, 요사이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사로 결정하곤 하는데, 부부관계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 또한 천륜이라고 생각해야 옳을 것입니다. 

3. 가족 관계는 정신적인 유대감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계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너무 위대한 일이어서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 사도의 편지에 사랑장(고전 13장)이라고 부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엔 사랑의 역할을 15가지로 분류하였는데, 하나같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의미들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배려이고 뜨거운 관심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치 않고 등등.  SBS에서 가족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영상 편지라는 코너는 우리의 코끝을 항상 시큰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느 시골 할머니가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네가 보고싶은데 너는 내가 보고싶지 않으냐?”고 할 때 말입니다. 

4. 성경에서는 유독히 부모 공경에 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가족 관계 보다 가장 소홀하기 쉬운 문제가 많은 때문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족 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부모 공경에 대해서는 약속이 뒤따르는 계명이 되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입니다. 부모 공경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현주소를 살펴보십시다. 하는 일이 어렵고 잘되지 않는 까닭 가운데, 부모 공경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하지 맙시다. 축복의 손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5. 어제 저의 여섯 번째 책이될 [루터교 예배 이해]가 출판사로 넘어갔습니다. 이번 종교 개혁 기념일에 맞추어 출간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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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11(00,10,18,수요일)
잠언 23:17-21, 찬송 248장.
제목 : 소망의 뿌리를 생각하십시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짧은 말속에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의미 있고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소망의 뿌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소망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의 형편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향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소망이 없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송두리체 내다 버린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소망에 관한 많은 질문을 가지는 생활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가? 왜 그런 소망을 가지는가? 어떻게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등등입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의 삶은 그만큼 충실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은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든든하게 유지되는 비결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인데, 하나는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라고 합니다(17절). 그래야 만이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18절). 오늘 우리들이 깊이 묵상할 내용입니다. 

4. 우선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악한 방법으로 출세하였거나 부정한 수단으로 축재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을 닮거나 따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결과만 보고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결과를 가져다 준 모든 과정까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출세와 축재가 되어야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들은 사상(砂上) 누각(樓閣)과 같은 것이어서 곧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옳지 못한 자세로 출세한 사람은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날이 올 것이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인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는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의지나 신념에 기초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참된 소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소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당한 방법,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와 지혜로 잘 감당하는 소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어서는 일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시는 것을 기다리십시오. 어떻습니까?  그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제 마음대로 헛된 일에는 시간과 물질을 탕진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항상 인색해 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않았습니까?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을 돕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이 튼튼한 소망 위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일입니다.

5.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여러분을 의탁하는 시간이 되게 하십시오. 오늘도 여러분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한 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매일 부족하지만 기도하고 있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여러분에게 기쁜 열매가 맺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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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10(00,10,17,화요일)
잠언 23:13-16, 찬송 312장.
제목 : 자녀를 가르치라.         

1. 오늘도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은 특별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과, 필요하다면 채찍을 아끼지 말라는 등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농사 중에 자식 농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자녀 교육은 중요한 부모의 사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두운 결과를 오늘 우리 사회 속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는 가정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듯한 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때문입니다. 옷매무새며, 말씨며,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 버릇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들이 이제는 내버려두었거나 아니면 포기해 버린 자식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3.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도, 해서도 안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남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체면을 지키라는 말 이상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함부로 소리치고 웃고 야단을 치는 것은 예절의 문제를 넘어서 사람되기를 포기한 야만적인 행동입니다. 조용한 차중에서나 모두가 명랑해야 할 거리에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일을 가정에서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건전한 목표를 세우고 달음질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삶의 목표를 물어 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한 헛된 꿈이 되지 않도록 잘 이해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곧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목표는 수정되게 마련입니다만, 꾸준히 목표를 바라보게 하면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목표가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목표를 세우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과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도록 그 범위를 좁혀 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신앙심은 어릴 때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면 신앙보다 현실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비판정신이 신앙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건강한 신앙생활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4. 오늘은 우리들의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훌륭한 인물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도 가져 보십시다. 이것이 복된 삶이 아닙니까?
오늘은 연합 여선교회가 주관하는 바자회가 도봉교회당에서 열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1명의 여신도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장래 교회지도자들이 될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하는 뜻 깊은 행사에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실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평안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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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9(00,10,16,월요일)
잠언 23:7-12, 찬송 358장.
제목 :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1. 오늘도 평화의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거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2. 애굽에서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별로 지역을 할당해서 집단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지파의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석으로 지계석을 세워두었습니다(수12:1-6, 13:7-21:45). 그리고 지계석을 반드시 옮기지 말라고 명하였습니다(신27:17). 사실 3,40년전까지만 해도 농촌지방에서는 경계를 표시하는 돌이나 말뚝 혹은 나무 심기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집과 집 사이에, 밭과 밭 사이에 이와 같은 경계 표시는 사람 사이의 재산을 상호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경계석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의 표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신뢰의 여부에 따라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할 때, 이와 같은 경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잠언서 기자는 지계석(경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이런 말씀의 배경에는 지계석을 옮기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무엇 때문에 지계석을 옮겼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분명 탐욕(지나친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탐욕의 유혹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다 현대인들이 신봉하는 “적게 일하고 많은 수확을 거두는 경제원리”라는 것도 이를 부추키는데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탐욕에서 시작된 지계석을 옮기는 일은 엄청난 손해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자산인 신뢰를 깨트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계표를 옮김으로 유형적인 재산을 혹시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보다 더 값진 신뢰를 잃어버린다고 하면, 어리석은 장사(?)가 아닐까요?

4.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이것이 오늘 잠언서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친구는 10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일생동안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거기에는 신뢰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이 소중한 신뢰를 내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바보들이 살고 있는 세상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바보를 뒤따라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신뢰를 더욱 쌓아갑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작은 유혹을 물리칠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5. 어제 우리 옥수동교회는 도봉교회 초청으로 친선 체육대회를 가졌는데, 축구(남자, 여자, 어린이)는 두 교회가 혼성으로 청백팀으로 나눠 가졌는데, 청팀이 2:1로 승리하였고, 교회대항 게임으로는 릴레이(6명씩 출전)는 도봉교회가 우승하였고, 줄다리기는 우리 교회가 우승하였으며, 응원전은 우리 교회가 돋보였습니다. 결국 종합 우승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에 전국 체전에 출전하고 있는 박찬우군(박희완-정신숙집사 차남)이 펜싱 에빼부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함께 축하합시다. 
오늘도 주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기도 드립니다. 주안에서 우리 모두 승리하십시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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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8(00,10,15,일요일)
잠언 23:1-6, 찬송 418장.
제목 : 그리스도 안에 머물자.    

1. 오늘은 주님의 날(主日)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2.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는 잠언의 말씀은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 지 모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탐욕이란 ‘지나친 욕심’ 곧,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뜻한다고 할 때, 이 역시 마음의 평정을 잃은 어리석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는 탐식자 혹은 포식자가 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것도 관원 앞에서 그리하라고 말씀합니다. 먹는 욕심은 본인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옆에서 바라볼 때에는 얼마나 추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관원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겠습니까? 3절의 말씀으로 미루어 짐작컨데는, 제법 높은 직위의 관원이 부른 연회 자리는 무엇인가 불의한 일을 꾸미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탐식자가 된다면, 그는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마침내는 위험한 모의에 가담하고 말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잘 먹은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 우리들이 빨리 눈치채야 할 문제는 탐욕과의 전쟁이 아닌가 합니다. 음식에 대해서 탐심을 가지는 것은 물론, 물질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심지어는 신앙에 대해서까지 탐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들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갈 것이고, 기쁨을 훔쳐갈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전자는 침착할 수 있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지만, 후자는 조급해하고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탐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님의 말씀까지도 머물게 할 빈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4. 탐심을 뽑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佛家에서는 좌선(坐禪)을 통해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번뇌)을 뽑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불가능한 헛수고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조금 나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탐심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탐심이 없는 참된 자아(自我)를 회복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자기 마음을 다스릴 만큼 힘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된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 역시 언제든지 탐심에 노예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있는 한은 전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5.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일이 신앙생활입니다. 비록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수 있고,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때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일 뿐, 실제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기독교인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 때만 기독교인이 된다는 뜻인데,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자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탐심은 마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이란, 마귀와 예수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따를 수도 있고, 주님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50대 50입니다. 

6. 우리가 기도할 최상의 내용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헛된 것을 구하지 맙시다. “주여, 나로 하여금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음성에만 따르게 하옵소서.”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기도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마귀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도록 기도합시다. 모든 의로움과 선함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오늘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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