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23(2001.2.8, 목요일)
시편 17:6-13. 찬송 : 318, 332장.
성경말씀 : 약 4: 8.            
제목 :  기도를 방해하는 두 마음을 품지 말자.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묵상 자료는 2월 8일 옥수동 루터교회 특별 새벽 기도회에서 선포한 말씀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어제 아침에 이어서 기도를 방해하는 것에 관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으로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두 마음을 품는 자들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대상 12:33, 시 12:2, 119:113 등에 나오는 말씀인데, 마음이 진실치 못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을 하나로 정하지 못해서 상황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바꾸기를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시119:113). 하나님은 마음이 진실한 자와 교제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두 마음을 품고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믿습니다 는 말은 곧 잘 하지만,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약 1:6-7에 보면 그런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이런 사람은 어떤 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아 보이는데, 또 어떤 때는 전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듯 기도하는 순간까지도 두 마음을 품는 것일까요?

3. 첫째는 세속적인데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경우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온통 생각과 마음이 세상 것들로 가득차 있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까지도 세상일에 분주합니다. 심지어는 기도하는 순간까지도 세상 것들로 계산하느라 분주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를 드리긴 하지만, 사실은 건성으로 중얼거릴 뿐, 진실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이 주는 기쁨, 세상이 주는 쾌락으로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권고합니다.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는 없을 줄 압니다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순간은,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고향에를 갔는데, 저를 알아보는 분을 하나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2년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주일학교 때 가르쳤던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큰 여관도 하나 운영하고 있고, 제일 큰 맥주집도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을 만나고 싶었지만, 세상일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기 때문에 내 얘기가 들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을 들었습니다. 세속적인 마음은 아주 복잡한 마음을 의미하며, 문제 투성이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순수함이나 깨끗함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무슨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육적인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동안 육체가 가진 욕망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육체의 본능이란 것이 있습니다. 생리적인 욕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셔야 하고, 배고 고플 때는 먹어야 합니다. 이성이 그리워지는 것이 육체가 가진 본능입니다. 거기다가 육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육적이라고 사용하는 말은, 썩어 없어질 것들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뜻할 때 쓰는 말인데, 가령 육적인 것으로는 탐욕이 해당됩니다. 지나치게 많이 가지려는 욕망들인데, 먹고 살만하면 다른 사람하고 나누어 쓰면 좋겠는데, 남이야 살던 죽던 나만 더 부자가 되려고 하는데서 오는 물욕이나, 남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신분 상승욕구나, 더 많은 쾌락을 누리려는데서 오는 각종 중독현상 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런 육적인 욕망은 덧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욕망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한 기도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설령 기도하려고 엎드리지만, 이런 욕망들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기 때문에 신령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을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4. 하나님의 팔을 움직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두 마음이 우리 안에서 정결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서 심령이 새로워지지 않고서는 기도가 즐거워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세속에 깊이 빠져있는 마음을 정결케 합시다. 육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을 정결케 합시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함께 기도드릴 제목입니다. 주여,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기에 정결한 마음 주옵소서.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단순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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