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2장 13-22절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하늘을 가리켰고, 젊은이는 천국이라고 말했으며, 노인은 
평화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추상적인 세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셔야 하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곳에 계셔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어디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추상적인 하나님 인식은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죽어서 아름다운 천국을 꿈꾸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삶을 학대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파들이 그랬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가족관계와 시민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가치를 평가절하 하였습니다. 언제든지 죽은 다음의 세상을 위해서라면 다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 지도자들은 탐욕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추상화하는 신앙은 슬픈 일이며, 잘못된 일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내세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현실적인 가족관계나 시민생활을 부정하는 경향입니다. 오늘과 영원, 현실과 이상의 관계를 
단순화시키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원수와 싸우기 위해 총을 들 수도 없고 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산모에게 
수혈을 해주지도 못하게 막습니다. 신앙은 현실과는 많이 다른 낯선 세계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한된 시간을 뛰어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과 영원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기가 어려워도, 참된 신앙은 
이 둘을 언제나 부둥켜안고 있어야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신앙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빗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힌 담이 헐리는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평화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안전이라는 뜻과 함께 어울림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평화의 세상입니까? 아니면 평화 없는 세상입니까?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지난 화요일 밤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 탓이겠지만, 집들마다 창문을 열어놓은 때문인지, 
밤새도록 싸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과 아내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만, 
아마도 짜증이 나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견의 충돌은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애교로 덮어줄 수 
있습니다만, 심각한 싸움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개인이건 사회건, 국가건 간에 막힌 담이 있는 것은 
안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께서 기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시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가 있는 곳, 원수가 친구로 손을 맞잡는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시며,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 우리 인간들 사이의 
가로 막고 있던 막힌 담을 헐어버린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육중한 막힌 담이 깨트려질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평화를 위해 살 때,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프란치스코는, 기독자로서 산다는 의미는 평화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잘못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하나님께서 계실 곳은, 이렇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상대방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신문은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습니다. 
손톱 만큼이라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만이 옳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난리들입니다. 
털어보면 다 엄청난 먼지들이 날 사람들이, 독야청청하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실 리 
만무하지요. 하나님이 안계시니 싸움뿐이고 슬픔뿐이지요. 평화를 만드는 일에 팔을 걷어 부치십시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데, 어찌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평화의 도구로 살도록 부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탐욕을 뿌리 뽑지 못한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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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0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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