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70.

시편 시 56:10-11.

찬송 267, 374, 37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좋은 약속이나 데이트 있으신 분들, 아침부터 무척 설레시겠지요? 그 기다림의 과정이 길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고, 아니면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는 경우도 있겠고요. 정작 그 순간보다 설레고 짜릿하게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을 텐데요. 떨리고 행복했던 첫 데이트의 순간을 떠 올려보면서 기다림의 순간을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123일 방송>

 

2. 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의 구약 이사야 6:1-13을 본문으로 소명(召命)에 응답하는 삶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자신의 할 일을 위해서 삶을 출발합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하며, 성경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뜻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며, 저마다의 고귀한 역할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직접계시가 필요한 시대가 있었습니다(1-5).

구약에는 사사를 비롯해서 제사장과 선지자들 그리고 왕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곤 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신비한 환상을 통해서 입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그리고 삼손과 기드온 사무엘과 엘리야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사야 등이 그런 인물들입니다. 신약에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밧모섬의 요한도 이런 직접 계시를 경험했던 인물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정경으로 확립되기 전에는 직접계시가 필요했습니다. 직접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직접계시는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과 환상들을 바르게 전할 엄중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참된 현존인 정경이 확립된 이후에는 성경이 직접계시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1:1).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은 책임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6-10).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극적인 장면을 읽었습니다. 이 구절만 떼어놓고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인간의 결단과 응답으로 가능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먼저 인간의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선행(先行)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 출생의 신비처럼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자신의 성별(性別) 재능 그리고 올곧은 의지와 성실성 등을 계획하거나 준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여기 있으니 저를 보내십시오.”라는 이사야의 응답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반응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운명 혹은 숙명이라는 말로 대체하지만, 우리들은 이를 소명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며 힘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소명을 확신할 때, 삶의 목적과 책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명을 따르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11-13).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힘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우리들 크리스천은 자신의 소명에 따르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고백합니다. 독을 짓는 이나 빵을 굽는 이가 평생을 그 일에 소명의식으로 일했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해도 됩니다. 크리스천 여부를 떠나 운명적인 삶을 제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 성별이나 재능 그리고 의지와 성실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두어야 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농사꾼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함으로, 저의 선생님은 건강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저마다의 본분에 충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한 삶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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