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1(00,10,18,수요일)
잠언 23:17-21, 찬송 248장.
제목 : 소망의 뿌리를 생각하십시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짧은 말속에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의미 있고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소망의 뿌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소망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의 형편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향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소망이 없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송두리체 내다 버린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소망에 관한 많은 질문을 가지는 생활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가? 왜 그런 소망을 가지는가? 어떻게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등등입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의 삶은 그만큼 충실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은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든든하게 유지되는 비결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인데, 하나는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라고 합니다(17절). 그래야 만이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18절). 오늘 우리들이 깊이 묵상할 내용입니다. 

4. 우선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악한 방법으로 출세하였거나 부정한 수단으로 축재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을 닮거나 따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결과만 보고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결과를 가져다 준 모든 과정까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출세와 축재가 되어야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들은 사상(砂上) 누각(樓閣)과 같은 것이어서 곧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옳지 못한 자세로 출세한 사람은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날이 올 것이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 것인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는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의지나 신념에 기초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참된 소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소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당한 방법,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와 지혜로 잘 감당하는 소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어서는 일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시는 것을 기다리십시오. 어떻습니까?  그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제 마음대로 헛된 일에는 시간과 물질을 탕진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항상 인색해 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않았습니까?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을 돕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이 튼튼한 소망 위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일입니다.

5.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여러분을 의탁하는 시간이 되게 하십시오. 오늘도 여러분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한 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매일 부족하지만 기도하고 있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여러분에게 기쁜 열매가 맺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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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10(00,10,17,화요일)
잠언 23:13-16, 찬송 312장.
제목 : 자녀를 가르치라.         

1. 오늘도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은 특별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과, 필요하다면 채찍을 아끼지 말라는 등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농사 중에 자식 농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자녀 교육은 중요한 부모의 사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두운 결과를 오늘 우리 사회 속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는 가정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듯한 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때문입니다. 옷매무새며, 말씨며,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 버릇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들이 이제는 내버려두었거나 아니면 포기해 버린 자식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3.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도, 해서도 안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남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체면을 지키라는 말 이상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함부로 소리치고 웃고 야단을 치는 것은 예절의 문제를 넘어서 사람되기를 포기한 야만적인 행동입니다. 조용한 차중에서나 모두가 명랑해야 할 거리에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일을 가정에서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건전한 목표를 세우고 달음질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삶의 목표를 물어 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한 헛된 꿈이 되지 않도록 잘 이해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곧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목표는 수정되게 마련입니다만, 꾸준히 목표를 바라보게 하면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목표가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목표를 세우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과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도록 그 범위를 좁혀 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신앙심은 어릴 때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면 신앙보다 현실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비판정신이 신앙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건강한 신앙생활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4. 오늘은 우리들의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훌륭한 인물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도 가져 보십시다. 이것이 복된 삶이 아닙니까?
오늘은 연합 여선교회가 주관하는 바자회가 도봉교회당에서 열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1명의 여신도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장래 교회지도자들이 될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하는 뜻 깊은 행사에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실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평안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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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9(00,10,16,월요일)
잠언 23:7-12, 찬송 358장.
제목 :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1. 오늘도 평화의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거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2. 애굽에서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별로 지역을 할당해서 집단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지파의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석으로 지계석을 세워두었습니다(수12:1-6, 13:7-21:45). 그리고 지계석을 반드시 옮기지 말라고 명하였습니다(신27:17). 사실 3,40년전까지만 해도 농촌지방에서는 경계를 표시하는 돌이나 말뚝 혹은 나무 심기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집과 집 사이에, 밭과 밭 사이에 이와 같은 경계 표시는 사람 사이의 재산을 상호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경계석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의 표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신뢰의 여부에 따라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할 때, 이와 같은 경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잠언서 기자는 지계석(경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이런 말씀의 배경에는 지계석을 옮기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무엇 때문에 지계석을 옮겼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분명 탐욕(지나친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탐욕의 유혹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다 현대인들이 신봉하는 “적게 일하고 많은 수확을 거두는 경제원리”라는 것도 이를 부추키는데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탐욕에서 시작된 지계석을 옮기는 일은 엄청난 손해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자산인 신뢰를 깨트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계표를 옮김으로 유형적인 재산을 혹시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보다 더 값진 신뢰를 잃어버린다고 하면, 어리석은 장사(?)가 아닐까요?

4.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이것이 오늘 잠언서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친구는 10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일생동안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거기에는 신뢰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이 소중한 신뢰를 내다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바보들이 살고 있는 세상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바보를 뒤따라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신뢰를 더욱 쌓아갑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작은 유혹을 물리칠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5. 어제 우리 옥수동교회는 도봉교회 초청으로 친선 체육대회를 가졌는데, 축구(남자, 여자, 어린이)는 두 교회가 혼성으로 청백팀으로 나눠 가졌는데, 청팀이 2:1로 승리하였고, 교회대항 게임으로는 릴레이(6명씩 출전)는 도봉교회가 우승하였고, 줄다리기는 우리 교회가 우승하였으며, 응원전은 우리 교회가 돋보였습니다. 결국 종합 우승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에 전국 체전에 출전하고 있는 박찬우군(박희완-정신숙집사 차남)이 펜싱 에빼부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함께 축하합시다. 
오늘도 주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기도 드립니다. 주안에서 우리 모두 승리하십시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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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8(00,10,15,일요일)
잠언 23:1-6, 찬송 418장.
제목 : 그리스도 안에 머물자.    

1. 오늘은 주님의 날(主日)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2.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는 잠언의 말씀은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 지 모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탐욕이란 ‘지나친 욕심’ 곧,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뜻한다고 할 때, 이 역시 마음의 평정을 잃은 어리석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는 탐식자 혹은 포식자가 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것도 관원 앞에서 그리하라고 말씀합니다. 먹는 욕심은 본인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옆에서 바라볼 때에는 얼마나 추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관원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겠습니까? 3절의 말씀으로 미루어 짐작컨데는, 제법 높은 직위의 관원이 부른 연회 자리는 무엇인가 불의한 일을 꾸미려는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탐식자가 된다면, 그는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마침내는 위험한 모의에 가담하고 말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잘 먹은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 우리들이 빨리 눈치채야 할 문제는 탐욕과의 전쟁이 아닌가 합니다. 음식에 대해서 탐심을 가지는 것은 물론, 물질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심지어는 신앙에 대해서까지 탐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들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갈 것이고, 기쁨을 훔쳐갈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전자는 침착할 수 있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지만, 후자는 조급해하고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탐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님의 말씀까지도 머물게 할 빈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4. 탐심을 뽑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佛家에서는 좌선(坐禪)을 통해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번뇌)을 뽑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불가능한 헛수고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조금 나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탐심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탐심이 없는 참된 자아(自我)를 회복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자기 마음을 다스릴 만큼 힘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된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 역시 언제든지 탐심에 노예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있는 한은 전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5.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일이 신앙생활입니다. 비록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수 있고,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때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일 뿐, 실제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기독교인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 때만 기독교인이 된다는 뜻인데,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자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탐심은 마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이란, 마귀와 예수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따를 수도 있고, 주님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50대 50입니다. 

6. 우리가 기도할 최상의 내용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헛된 것을 구하지 맙시다. “주여, 나로 하여금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음성에만 따르게 하옵소서.”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기도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마귀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도록 기도합시다. 모든 의로움과 선함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오늘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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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7(00,10,14,토요일)
잠언 22:29, 찬송 218장.
제목 : 당당하게 살기.  

         
1. 오늘도 주님의 은총 가운데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어제는 인터넷에 문제가 있어서 메일을 보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즐겁고 유익한 하루를 지내셨으리라 믿습니다.

2. 오늘의 말씀은 “당당하게 살기”라는 주제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한결같은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잘 살아보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이런 생각을 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잘 살아볼까?’ 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정해놓지 않은 가운데서, 그저 잘 살기만을 바라는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뒤따르게 될 수 밖입니다. 가령, 부자가 되는 일이나 유명인사가 되는 일 등을 잘 사는 일인 듯이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3. 성경 말씀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분명히 표현한다면, ‘자기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정말로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보내어졌다고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자신의 사명을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있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사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런 자기 사명을 깨닫는 것이 “철이 들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기 사명을 알고, 그 사명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며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자리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성실하게 임한다고 하면, 적어도 반쯤은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직껏 자기 사명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사명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찾아 나섭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동안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다합시다. 나중에 제 자리를 찾게 될 때까지 만이라도 말입니다. 그 때 가서는 그 새로운 일에 또 열심을 다하면 되니까 결코 헛된 일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입니다.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부모를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낙심하기 잘하고, 원망 불평 늘어놓는 그런 추태를 보여주지 맙시다.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이기에 더욱 성실한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5.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힘겹고 불가능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가능을 새로운 기회로 변환시키는 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며 모시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여러분의 나아옴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든 여러분이 말을 할 때 들으실 준비를 하고 계시고, 손을 내밀 때 잡아 줄 채비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이 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삶이 당당함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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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5(00,10,12,목요일)
잠언 22:16, 찬송 508장.
제목 : 사람을 귀하게 여깁시다. 

1. 바둑 용어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욕심 내다가 되려 큰 것을 잃어 버린다 는 뜻입니다. 잠언 기자는 이런 어리석은 모습들을 너무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처럼 물신(物神) 시대에는 사람의 가치보다는 물질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물질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고 충고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재물 앞에서 사람이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돈이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편에서도 여전히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利)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利를 얻으려고) 부자에게 (뇌물을)주는 자는 가난하여 질뿐이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몇 마디 말을 끼워 넣어 보았습니다.

2. 말씀의 중심은 사람의 가치나 양심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과 물질의 가치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의 가치이고, “악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합니다. 이해 관계 혹은 이익 때문에 우리는 힘없고 어려운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 일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말상대도 안해 주었으며, 듣는 시늉만 했지 말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힘이 있고 넉넉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친절을 베풀고 그의 말을 귀담아 새겨들었는지 모릅니다. 순전히 이해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사람의 가치를 그가 가진 능력에서 찾고 있기에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3. 역대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하나 같이 부정 축재자로 규정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현직 대학 교수라는 분이 사업 자금을 구하려고 부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질 앞에서 사회적인 명예와 신분조차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는 예 입니다. 이것은 크게 빗나간 가치관입니다. 사람이 귀합니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간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 까닭은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만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의 옷차림새나, 그가 타고 온 자동차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을 보지 못하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신분의 고하를 물론하고,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해서, 소중하게 대해 줍시다. 말씨도 태도도 정중하게 대해 줍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부자에게 아첨하는 자는 반드시 더욱 가난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부자의 개념은 조금 해석이 필요합니다. 참된 부자는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실제로 많은 재산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마음과 주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부자입니다. 내미는 손길을 가진 사람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있지만, 여전히 배고픈 거지처럼 돈에 걸신들려서 움켜쥐려고만 한다면 그는 가난뱅이에 불과합니다. 

4.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사마리아회]가 일산으로 목욕봉사를 떠나는 날입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는 마지막 인생 길을 걷고 있는 노인들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이들을 찾아가서 보름동안 씻지 못한 몸을 씻어 드리는 일을 합니다. 때로는 눈물로 씻어 드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아름다운 손길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초라한 늙은이들이지만,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귀한 삶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사람을 섬겨주십시오. 사람을 귀하게 높여 주십시오.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 주십시오. 이것이 부자처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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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4(00,10,11,수요일)
잠언 22:12, 찬송 298장.
제목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1. 사람들은 잘못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실수로 또는 무지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고의로 잘못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실수나 무지에서 잘못했다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계획적인 범죄는 변명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범죄 심리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우선 아무도 모르게 잘못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인데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복면을 했는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범죄 유형으로 뇌물을 세탁했으니까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범죄 심리로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깨끗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럽다는 한통속 논리입니다. 

2.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집을 감찰하”신 다고 말입니다. 감찰이라는 말은 샅샅이 다 들여다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양심은 완전 범죄는 없다고 증거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감찰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으시며, 특히 우리들 인생에 대해서는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우리고 계십니다. 믿건 믿지 않건 간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분에 넘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못할 때에도 바라보고 계시지만, 우리들이 아름답게 살아가거나 힘겹게 고개     길을 걸어 갈 때에도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한 복판에 있을 때에도, 혼자서 외롭게 서 있을 때에도 바라보고 계십니다. 희망과 열정에 들떠 있을 때 뿐 아니라, 낙심과 슬픔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몰라할 때에도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존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4. 오늘 여러분은 이런 저런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면전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는 의식 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눅이 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쓸데없는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 때 즐거움으로 하듯,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냥 즐거움을 드리고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살면 됩니다. 이미 부모님은 그 자녀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역시 그리하십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린다고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만은 꼭 가져 주십시오.

5.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이것을 모르는 분은 아마 우리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은총의 손길이 여러분 위에 머물고 계심을 바라보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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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3(00,10,10,화요일)
잠언 22:6, 찬송 305장.
제목 : 마땅히 가르칠 부모의 책임들.

1. 삼강이란 덕목을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와 백성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킬 도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지도자는 지도자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부모와 자녀들 역시 그랬고, 남편과 아내 역시 그랬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가령 부모를 홀대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불효자식이라고 책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분명 부모를 홀대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책망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서울 거리에는 제 멋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구별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도자와 백성이 구별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 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2. 좋은 시대라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없진 않으나, 조금만 깊이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힘 센 사람이 주인 노릇 하는 기막힌 시대가 되었구나.”하고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중학교 여학생이 노인을 뒤따라가서 밀쳐 결국 죽게 만드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들이 제 자리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옛날부터 계속 이 점을 분명히 내다보았습니다. 모든 가정에서 부모가 제 자식을 잘 지도하면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의 비극도 사실은 가정의 붕괴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모든 기본이 되는 교육은 부모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기본 교육, 기초 교육, 이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본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은 부모에게 맡겨진 거룩한 책임입니다.

3. 어떤 것들을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말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우선 바른 말씨를 가르칩시다. 듣기에 저속한 쌍스런 말에서 시작해서 험한 말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입에서 이런 말씨가 사라지도록 엄하게 지도합시다. 이런 경우엔 지체 말고 벌금을 물게 하거나 야단을 아끼지 맙시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씨를 권장합시다. 시퍼런 칼보다 더 사람의 심장을 헤집는 말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 우리 가정에서 부드러운 말로 본을 보여 줍시다. 사랑과 격려의 말을 사용토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갖도록 격려해야 하겠습니다. 갈수록 자기 중심적인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독불장군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겠는데, 저마다 제 고집대로 살려고 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 훈련이 필요합니다. 언뜻 보기엔 손해보는 일처럼 생각되기에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외동 아들, 딸로 자라난 세대에게는 정말 어려운 주문입니다. 그래서 칭찬과 모범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어느 불신자 아버지가 자식에게는 교회에 다니도록 권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살벌해서 분명 잘못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아니하신다면 아무 것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인으로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들은 필경 제 구실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하나님께로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불안한 생각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4. 자식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웃을 때 그들도 웃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슬퍼할 때, 그것은 우리의 슬픔입니다. 우리가 절망하면 그들도 절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보람과 기쁨 가득한 세상을 달음질 할 때,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며 또한 위로가 될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어른들이 제 자리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아무 염려 없이 건강하고 당당한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운차고 사랑스럽게 자라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오늘 11시에는 도수리 사모님(도로우목사님)의 요한 비헤른 봉사상 수상식이 루터신학대학교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부름받은 주님의 작은 종 박성완 목사 드림.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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