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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06 아디아포라의 문제로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 고전 8:1-13.

묵상자료 8329(2024. 3. 6. 수요일).

시편 시 50:7-8.

찬송 35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상이나 이념은 예술가에게 고단한 것이었습니다. 뚜렷하면 뚜렷한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 대로, 예술가들은 기득권에게 휘둘리며 살아가는 일이 많았지요. 짧은 기간 동안 개화기와 식민통치의 시기, 그리고 정치 이념의 대립과 전쟁을 치러내야 했던 우리의 경우엔 더욱 그랬습니다. 정세가 바뀌고 통치하는 사람들의 이념이 바뀔 때마다, 예술가들의 삶은 휘둘러야만 했지요. 앞서 걸어 나갔던 사람이나 시류에 편승했던 사람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더불어 예술적인 업적은 그의 정치적 성향만으로, 폄하되거나 훼손되기 일쑤였지요.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작곡가 김 순남의 본명은 김 현명이었습니다. 보통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조선 최고의 작곡가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작곡가 김 순남의 재능은 뛰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유학 후 귀국한 김 순남에게는, 사상이라는 벽이 생겼지요. 좌익과 우익으로 대표되는 사상의 대립이 깊어지면서, 김 순남의 음악활동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김순남은 이 곡이 수록된 가곡집 [산유화]를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음악 교과서에 김 순남의 <건국 행진곡>이 수록된 1947년의 일이었지요. 그렇지만 같은 해 좌익 운동이 비 합법화 되고, 이듬해인 1948년 김 순남에겐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체포령을 피해 월북하면서, 김 순남의 음악은 한 동안 지하에 묻혀있어야만 했지요. 김 소월 시 김 순남 곡 <산유화>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5일 방송>

 

2.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1-13)”을 읽었습니다. 신앙이란 생활과 연결된 것이어서 복잡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어제 국민일보에는 1030세대에게 기도제목 3가지를 적게 하고, 그들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인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 톡에 기도제목과 관계된 키워드와 문장을 올리는 실험을 하였는데, “실험 결과 10~30대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기도제목과는 달리 상당히 다른 일상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408명으로부터 파악한 5234개의 키워드와 문장을 분석한 결과 기도제목과 3개 플랫폼 관심사 내용이 모두 일치하는 크리스천은 100명 중 7(6.8%)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기도제목과 플랫폼에 남아있는 관심사가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15.8%에 달했다. 자신의 기도제목과 일상적 관심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유일하게 정통 유대교도들과 비슷하게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비기독교인 들이 말하는 대로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청교도 신앙을 강조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자유롭게 개방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유독 한국선교에서만은 금주와 금연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제가 되는 제사 음식에 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잣대로 가르친 것입니다. 이 또한 청교도인 자신들이 신학교에서는 아디아포라의 문제인 것을 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에서만은 심각하게 구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가르쳐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푸줏간에 나온 소머리는 여러 집의 제상에 올려졌다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누군가가 그 소머리를 사다가 먹었을 것입니다. 예전 제가 어릴 때만해도 시골 마을에서는 제사상에 올렸던 제사음식을 이웃끼리 나누어먹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물론 잘 믿는다고 소문난 집에는 제사음식을 보내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으면 제사를 지낸 사람과 동일한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따져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우상과 무관한 것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밥상에 올라온 굴비는 풍어제를 드리고 잡아온 고기이고, 우리가 입는 천이나 옷감 그리고 완제품인 옷은 최소한 고사를 지내고 시작한 공장의 제품이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타고 다니는 대중교통이나 잠실야구장 역시 고사를 지낸 후에 이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디아포라 문제>입니다. 요약하면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를 취급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수 백 수천의 신을 섬기고 있다는 말로 그 차별화를 분명히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돌이나 나무 형상을 신이라고 우기는 것을 우리가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헛된 일에 기운 빼는 것은 그들의 몫으로 두자는 얘기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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