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34(2024. 3. 11. 월요일).

시편 시 50:22-23.

찬송 47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봄이라는 말 뒤에는 유독 처녀나 아가씨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봄이 지닌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흡사 젊은 여인들의 미소와도 비슷하지요. 고대 그리스의 여신 플로라에서부터 자잘한 흰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쓴 북 유럽의 소녀 그림이나, 또 아름다운 물방울 간의 아가씨 같이 모두가 다 봄입니다. 수천 년 동안 지구의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겨울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소녀들을 아직은 바람이 싸한 들판으로 내 보내 봤습니다. 봄을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무엇이 즐거운지, 봄 들판의 아가씨들은 콧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3천 년 전 유행가를 모은 [시경]에도 봄나물을 캐는 소녀들이 잦은 소재가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겠지요.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랭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 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소 먹이던 목동이 손목 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나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 어여쁘다 그 처녀

    산뜻하고 유창한 선율 진행에, 듣는 이도 더불어 유쾌해 지는 곡이지요. 1931년에 발간된 현 제명 작곡집 제2집에 수록된 후, 꾸준히 사랑받고 대표작입니다. 현 제명은 대표곡인 <그 집 앞>을 자신의 노래로 대중 앞에서 초연할 정도로 성악가로써 역시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5년 동안 음악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연희전문 영어 교수로 부임한 그는, 귀국 초기 음악 독창회를 갖거나 가곡 등을 취입하는 등 주로 성악활동에 전념했습니다만, 곧 작곡에 몰입하게 되지요. 부르기 쉽고 이탈리아 민요를 연상케 하는 가볍고 경쾌한 곡의 분위기는 테너였던 자신의 목소리에 맞추어 작곡된 때문이라고 전하기도 합니다. 현 제명 작사 작곡 <나물 캐는 처녀>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10일 방송>

 

2.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23-11:1)”을 읽었습니다. 여러 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5명이 한 방을 사용하였는데, 20, 30분 간격으로 무슨 검사다 하면서 5명의 병상을 찾아다니며 불을 켜고 치료를 하게 되면 깊은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환자와 병간하는 가족 간의 말다툼도 자주 있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회 공동체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현상은 피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신앙지식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한 일들이었는데,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작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그 중의 대부분은 아디아포라에 해당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가령 방학 때가 되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형들이 내려오는데, 대부분 주변의 산들을 찾아다니곤 하였는데, 그 형들이 메고 다니는 배낭 속에는 담배랑 소주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고향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의 자재분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로는 먹고 마시는 것이 구원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고향에 남아서 농사를 짓는 형님의 친구는 몇 차례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6개월 수찬금지 책벌/責罰을 받고 있는 그런 처지인데 말입니다. 이런 문제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술렁거리기까지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아디아포로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가르침을 주어야 하겠다 생각한 글이 오늘 본문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초 문제나 제사 음식을 대하는 자세나 주일 성수나 십일조 등에 대해서 자기 견해가 분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흔들리기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때문입니다. 가령 구원에 관한 성경의 말씀은 시제/時制에 주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과거나 현재의 시제를 강조한 나머지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에 관해서 3가지 시제를 다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2:8). 구원을 받는다(10:13). 구원을 받을 것이다(2:12)와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의 심령을 파악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해하시고 가장 적절하게 판단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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