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31(2024. 3. 8. 금요일).

시편 시 50:12-15.

찬송 37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일, 그리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노력은 주변을 작게나마 변화시키고, 그 작은 변화는 더 큰 반향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작곡가 임 원식의 노력이 그랬습니다. 임 원식은 작곡가이기 이전에 지휘자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국내 지휘계 1세대로 해외 유학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미국 쥴리어드 음대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현 제명 계 정식 등과 함께 해방 후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 교향악단>을 창단하기도 했지요. 지난 2002년 타계하기까지 우리 음악사에 임 원식이 미친 영향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풀밭에 외로이 선 돌부처 옆에/ 반나마 묻힌 얼레빗 하나/ 임자 없는 얼레빗 하나/ 세월은 흘러가도 빗은 예대로 꼽혀 있네/ 돌부처 두고서 맹세하던 그 애 애닲아라/ 지금은 뉘 집 각시 되었노

    작곡가 임 원식의 가곡으로는 <아무도 모르라고> 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임 원식이 스물 셋 청년이었던 1942년 일본 도쿄 고등 음악학교 유학시절에 지은 곡이지요. 일제 치하였던 탓에 우리나라 시인의 시가 무척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때 임 원식은 파인 김동환의 시 몇 편을 발견하지요. 그 작품들 가운데 <아무도 모르라게><얼레빗>이 있었습니다. 참 빗과는 다르게 빗살이 굵고 성긴 반원형의 큰 빗을 얼레빗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본래 형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얼레빗을 보기가 참 쉽지 않지요? 견결하면서도 서정성이 돋보이는 파인 김 동환의 시와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김 동환 시 임 원식 곡 <얼레빗>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7일 방송>

 

2. “사도의 권리와 의무 2(16-27)”을 읽었습니다. 요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서재로 사용하는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누렇게 말라있는 잔디밭이 사랑스럽고, 한 눈에 들어오는 감나무 모과나무 목련나무 단풍나무도 정겹기만 합니다. 십 수 년을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걸 바라보는 제 마음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우쳤습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복음 증거자의 자의식 또는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매일 배달되는 교계 뉴스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이중직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합니다. 제가 목회자를 결심했을 때는 많은 고향교우들과 친지들이 헐벗고 굶주릴까를 걱정하였습니다. 제게 청혼을 하려던 여자 친구는 슬픈 눈으로 저를 쳐다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70년대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전후해서 한국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하였습니다. 전국복음화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고, 목사 지망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마치 성공의 지름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진정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유행이었고, 인간 세상의 풍조였던 것입니다. 복음증거자의 자의식이나 정체성에서 보다 진지한 자기 검증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복음 증거자의 자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전도자의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화가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무로 보수를 기대할 수 없다 합니다. 다음으로 복음 증거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 증거자로 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유인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을 강조하고, 이방인에게는 율법보다는 도덕을 강조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비굴해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에게 복음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일한다면, 복음 전도자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면류관이 아니라, 불멸의 면류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자의식과 정체성을 가진 일꾼을 한 사람만이라도 육성해야 하겠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제 힘과 지혜로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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