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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12 고린도 교회의 특별한 배경이 만든 전통(?) / 고전 11:2-34. 1

묵상자료 8335(2024. 3. 12. 화요일).

시편 시 51:1-3.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원로 작곡가 김 국진은 동세대 음악인 중에서 그리 잘 알려진 편은 아닙니다. 선생은 1930년 평남 강동에서 나고 자랐지요. 당시 음악을 배웠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랬듯 김 국진 선생 역시도 신학교에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나자 작곡가 김 국진은 바이올린 하나만 들고 월남해 부산에 정착하지요. 그리고 작곡에 전념했습니다. 교회 음악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탓인지, 작품 중에는 종교적인 색채를 띤 곡들이 많았지요.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더불어서 말입니다.

    “꽃 그리워 하다가/ 고향 선운사 바람에 마음 속 건너/ 어머니의 봄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꽃도 이제 피지 않는다/ 다시 핀다고 해도 꿈속에서나 아니면 비탈진 계절에 피는 상사화/ 어머니 선운산에 온통 꽃불이 났네요/ 오지 않는 어머니의 계절은 어디론가 가서 여승의 허물을 벗어주고/ 하늘 가 구름들이 새들을 따라가네/ 낯선 여행길에서 회귀하는 따뜻한 어머니의 꽃으로/ 흔들리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늘 서둘렀네

    박 남권의 시에 김 국진이 작곡을 한 이 곡 <꽃 불>, 2007년 제8회 서울 창작합창제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우리 전통 리듬과 애상적인 노랫말의 조화가 인상적인 곡인데요. 곡이 지니고 있는 서정적이면서도 향토적인 느낌은 시대를 짐작할 수 없게 합니다. 작곡가 김 국진은 오랜 작품 활동 기간 동안, 교향곡 칸타타 우리 가곡에 이르기까지, 3천여 작품의 곡들을 완성했습니다. 그 가운데 발표가 되고 녹음된 가곡 작품은 30여 편에 이르고요. 가곡 작곡가로 알려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지요. 박 남권 시 김 국진 곡 <꽃 불>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11일 방송>

 

2.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2-16)”주님의 성찬(17-3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성경의 중심 주제나 맥락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성경의 배경에서 취급하였던 문제들을 구별해 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를 표제어로 삼은 본문도 그런 말씀 중 하나입니다. 에베소에서 활동하던 바울 사도에게 고린도 교회에서 불거진 문제 중 하나는 예배에 참석하러온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고 오는 것에 대해서 갑론을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가불 사도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1세기 아랍 문화권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는 19837월 말 경이었습니다. 현재의 고린도 시는 완전히 폐허가 된 곳입니다만, 화려했던 옛 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안내인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여러 신전들을 주목하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헬라의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곳은 우상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신전을 유지하고 번창하기 위해서 많은 창녀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했습니다. 당연히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레스,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헤파이스토스, 디오니소스 등 12신은 물론 로마의 신들,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용병들의 나라에서 섬기던 신들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경쟁이 일어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상의 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특별히 여성들이 예배하러 모이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상의 신전들에 고용되어 있던 거리의 여자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표시로 머리에 수건들 쓰는 전통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기에, 여러 가지 얘기들이 성경적 견해를 덧 입혀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1세기 헬라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사도의 권위 있는 지도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녔던 1950년대 혹은 1960년대의 기독교회는 공 맹자의 윤리적인 해석이 설교에서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회를 저급한 연애당 취급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자신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는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이렇듯 성경의 배경이 본문처럼 등장하는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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